‘고릴라’와 고래 뜻하는 ‘구지라’의 합성어

영화 <고질라>.

일본이 내세운 대표작 히트작 시리즈물이 고질라(Godzilla). 타이틀은 ‘고릴라’와 고래를 뜻하는 ‘구지라’를 합성시킨 말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할리우드 흥행가를 장식했던 <고릴라> <킹 콩> 등을 모방해 일본의 간판 영화사인 도호영화사가 창조해낸 몬스터 영화의 원조이다. 1956년 테리 모스 감독이 이노시로 혼다를 기용해 공개한 <고질라, 괴수의 왕>이 효시 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고질라는 도쿄 등 일본 대도시를 쑥밭으로 만드는 횡포를 부리다 사라지는 것으로 설정해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질라는 로봇 주인공인 마징가 Z, 만화 주인공 아톰, 2차 대전 당시 위엄을 드러냈던 야마토 함(艦) 등과 함께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대표적인 문화 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은 고질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끊임없는 집착에 대해 ‘거대하고 화려함을 내세우고 있는 서양인들의 취향에 절대적인 숭배감을 보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왜소 콤플렉스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라는 지적을 해주고 있다. 이 소재는 극영화, 만화 영화 등으로 근 50여 편이 공개될 정도로 성원을 받았는데 그중 영화계에서는 <고질라 대 괴물>(1964), <고질라 대 바다 괴물>(1966). <고질라의 복수>(1969), <괴수 섬의 고질라>(1972), <고질라 대 우주 괴물>(1974), <고질라 1985> 등이 장수 인기를 누리는데 기여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지난 1980년대 초반 ‘아시아인 중에 가장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라는 조사를 했는데 이때 추천된 이들이 ‘이소룡, 히로히토 천황 그리고 고질라’였다. 흔히 아시아의 킹콩이라고 할 수 있는 고질라는 이처럼 인간이 아닌 영화 속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정도로 큰 여파를 끼친 존재이다. 이 때문에 일본 영화계가 탄생시킨 최대의 히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질라는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장이었던 비키니 제도가 탄생지였다는 점도 미국인들의 호감을 받아낼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1954년 첫 선을 보인 이래 고질라는 무지막지하게 부수고 횡포를 부리는 과장되고 허황된 행동을 했지만 일반 관객들은 ‘현실 생활에서 부딪힌 욕구 불만을 해소시켜 주는 존재’로 성원을 보내 ‘괴물 영화의 상징적인 우상’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고질라는 일본 영화사의 발전을 앞당기는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 중 이노시로 감독과 특수 효과 맨 쓰부시라 에이지는 제작사인 도호 영화사를 지탱해 주는 간판격인 영화인으로 대접받았다. 당시 일반 극영화 제작비의 3배에 달하는 6000만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한 고질라 옷을 입고 얼굴 없는 주역을 맡았던 시무라 다케시가 1954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에 발탁돼 세계적인 배우로 갈채를 받는 등 여러 뉴스를 만들어 냈다.

‘고질라는 핵무기가 발사되고 난 후에 남겨진 방사능 폐기물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시켜 1950년대 세계 강대국들이 치열하게 전개시켰던 핵무기 개발의 후유증과 엄청난 파괴력에 대한 경각심을 동시에 고발해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애초 ‘고질라의 죽음은 핵실험의 종식을 뜻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질라가 장렬히 죽는 것으로 극이 종결됐다. 하지만 이 영화가 미국 극장가에서 공개된 뒤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자 컬럼비아 영화사는 동경 주재 미국 특파원역으로 레이몬드 바와 감독으로 테리 모스를 기용해 1956년 <고질라, 괴물의 제왕>을 전격 공개한다. ‘고질라와 비교하면 킹콩은 난쟁이’라는 광고 문구에 부응하려는 듯이 이 영화는 공개 즉시 극장 앞이 장사진을 이루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에 자극을 받은 도호 영화사는 곧바로 고질라가 다시 환생해 다리가 짧은 공룡인 안지라스와 치열한 영역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을 담은 <고질라의 역습>을 선보여 연타석 흥행 홈런을 날린다.

이후 고질라는 근 6년 이상 속편이 제작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 뒤 드디어 1963년 할리우드에서 이노시라 혼다 감독이 고질라와 킹콩이 대결을 펼친다는 <킹콩 대 고질라>를 들고 나와 화려한 컴백을 선언한다. 이 영화에서 고질라가 킹콩을 향해 불을 내뿜는 행동은 미^일간의 전쟁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됐고 킹콩이 패배해 자신의 고향인 남지나해로 돌아간다는 라스트 신은 일본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면서 당시 일본 영화 사상 최대 관객 수인 1200만 명을 동원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다음해 유니버설 영화사는 미국의 뉴스 앵커가 위성 중계를 통해 고질라의 활동을 속보로 보도하는 내용을 추가로 삽입시킨 미국 판을 공개한다. 도호사는 자사의 간판 상품인 고질라의 흥행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상당한 마케팅 전략을 시도한다. 그중 기본 모델은 그대로 유지시킨 채 주요 부품만을 신형으로 바꾸어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켰던 폭스 바겐 자동차의 판매 전략을 원용해 고질라가 나방, 머리가 3개 달린 용 등 강력한 경쟁자들과 맞대결을 시도해 근 10년 이상 흥행가에서 속편이 성원을 받게 만든다.

1964년에 공개된 <고질라 대 괴물>에서는 고질라가 이전에 도쿄 등 대도시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공포스런 이미지를 보여 준 데서 탈피해 인류 미래의 안전을 위한 악역을 맡은 동물들을 퇴치하는 평화적인 행동을 보여주어 갈채를 얻어낸다. 하지만 1975년에 공개된 <고질라 대 메카고질라>가 신선감이 떨어졌다는 평과 함께 흥행에서 참패를 기록했고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의 흥행 돌풍으로 고질라의 위력이 급속히 하락하는 수모를 당한다.

이후 도호사는 근 10여년만에 흉포한 행동을 자행하는 고질라를 컴백 시킨 <고질라>를 선보여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사쓰마 켄파치로가 고질라 옷을 입고 주역을 맡았는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감명을 받아 그를 초대해 신상옥 감독의 <불가사리>의 괴물 불가사리 역을 의뢰해 제작되기도 했다. 1989년 도호 사는 시나리오 작업에만 근 3년여를 투자해 <고질라 대 바이오란트>를 선보여 히트작으로 만든 뒤 여세를 몰아 1992년에는 <고질라대 모스라>를 공개했는데 이 작품은 무려 400만명 이상의 관객과 22억 엔의 흥행 수입을 올려 역대 최고 흥행작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어 1994년에는 고질라 탄생 40주년을 기념한 <고질라대 스페이스 고질라>가 공개됐는데 주역을 맡은 켄파치로는 라스트 신에서 고질라가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은 ‘인간이 핵무기를 계속 남용했을 때 고질라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온다는 경고의 메시지다’라고 공개해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관객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이빨과 온몸이 울퉁불퉁한 고질라가 늘상 대도시를 쳐부수면서 현대 문명을 조롱하는 듯한 반복적인 내용에 식상감을 느낀다는 비판 여론이 일어나자 잠정적으로 더 이상의 고질라를 제작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다. 이러한 때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인 트라이스타가 도호 영화사로부터 미국 판권을 사들여 1992년 미국 판 제작에 나선다. 하지만 연출자 장 드 봉이 제작사와의 마찰로 중도 하차하는 곤욕을 치른 뒤 <인디펜던스 데이>로 명성을 얻고 있었던 롤란드 에머리히 감독이 ?엄청난 놈이 온다?는 광고 문구를 내세워 <고질라>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 ‘동원 IQ’ 참치가 등장함에 따라 해당 회사인 동원산업이 영화 공개 당시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펼쳤다. 동원산업은 극중 괴물 고질라가 부숴 놓은 일본 어선을 조사하던 한 과학자가 동원 참치라는 상표가 뚜렷하게 보이는 참치 캔을 집어드는 장면이 10여초 동안 공개된 것이 결국 자사 제품이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행운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인터넷에도 고질라의 모든 것을 담은 사이트 ‘http//www. ama.caltech.edu/users/mrm/godzilla.html’가 개설돼 지구촌 영화 매니아들의 이목을 끌었다. 2000년에는 고질라 연구에 일가견을 이룬 시노다 유지 박사가 다시 도시에 출현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고질라를 퇴치시킨다는 일본의 오가하라 다카오 감독의 <고질라 2000>이 공개돼 식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고질라 열기를 느끼게 했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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