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찾아줘’ 진유영.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반가운 삼촌의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 제작 26컴퍼니)로 12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배우 진유영은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웠지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50대 이상 중장년 올드팬이라면 기억하는 젊은 시절 반항아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상암동 <스포츠한국> 편집국을 직접 방문한 진유영은 다소 설레고 긴장된 표정이었다. 인터뷰 섭외 당시 기자가 원하는 장소로 가겠다는 제안했지만 신문사를 직접 찾아오겠다고 본인이 강력히 요구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중견배우의 열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순간이었다.

1976년 임권택 감독의 ‘낙동강은 흐르는가’로 스크린에 데뷔한 진유영은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학원 코미디 ‘얄개 시리즈’로 하이틴스타에 등극했다. 1980년대에는 김홍신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인간시장’ 시리즈에서 주인공 장총찬 역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덕션 사업에 뛰어들면서 영화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4년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와 2007년 ‘해부학교실’에 특별출연한 것뿐. 가장 궁금한 “왜 연기 생활을 떠나려 했나?”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완전히 떠난다는 생각을 하고 쉰 건 아니에요. 정말 어린 시절부터 영화밖에 모르고 살아왔어요. 그러다 90년대 중반 방송다큐멘터리 제작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는데 정말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모든 게 촬영 전 계획돼 있는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날 것 그대로 찍는 게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그 매력에 푹 빠져 지내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르는 줄 몰랐어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작은 극장도 함께 운영하게 됐는데 그게 영화에 대한 그리움을 커지게 만들었어요. 그곳에서 상영하는 최신 한국 영화들을 보니 마음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상영되는 최신 한국 영화들을 보는데 어찌나 완성도가 높고 재미가 있는지 놀라웠어요. 영화인으로서 후배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했죠. 그러면서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어요. 그때 마침 ‘나를 찾아줘’가 저를 찾아왔어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적으로 호평을 받은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 정연(이영애)이 실종된 아들을 봤다는 연락을 받은 후 낯선 곳, 낯선 이들 속에서 아이를 찾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담은 스릴러. 진유영은 정연이 아들을 찾기 위해 찾아간 만선낚시터의 주인 강노인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친다. 강노인은 악해지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방식이 악한 것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섬뜩한 인물. 진유영은 비중은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건넸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역할의 크기요? 이 나이에 그런 건 신경 쓰면 안 되죠.(웃음) 흥미로웠던 게 제가 주로 반항적이고 정의를 찾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강노인은 그것과 반대되는 기득권 계층이었던 거예요. 새로운 도전인 거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그냥 만선낚시터의 강노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에 살고 있으면 인물에 빠지기 힘들 듯해 촬영장 인근에 방을 얻었어요. 촬영은 10일 정도만 했는데 두 달 동안 촬영장 인근에서 머물면서 강노인처럼 살았어요. 오랜만에 촬영장에 돌아오니 모든 게 신기하더라고요. 제작 환경이 좋아진 걸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예전과 비교해보면 정말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철두철미한 프로들이더라고요. 정말 기뻤고 뿌듯했어요.”

한때 시스템과 권위에 대항하던 ‘반항아의 상징’이었기 때문일까? 진유영은 ‘나를 찾아줘’서 노인을 연기했지만 실제 모습에서는 청년의 혈기가 여전히 뿜어져 나왔다. 주위에서 나이에 맞게 예우를 해주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고. 젊은 스태프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곧장 ‘선배’로 불러주기를 요구할 정도로 권위나 체계에 구애받지 않는 열려 있는 사고를 갖고 있다. “스태프들이 다 젊으니 편하기보다 더 조심스럽고 어렵더라고요. 처음 촬영 들어갈 때 나를 표출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자고 다짐했어요. 사실 세대차가 엄청 나니 그 친구들이 내가 뭘 했던 사람인지 어찌 알겠어요. ‘내가 왕년에 어쨌고 저쨌고’ 말하는 것도 쑥스러워 연기에만 전념했어요. 시간이 지나니 차차 저에 대해 알게 되고 친해졌어요.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과 유재명을 비롯한 만선 낚시터 사람들 모여서 소주 한 잔 하면서 피로를 풀곤 했죠. 저도 12년 만에 컴백하는 작품이고 감독님도 이 영화를 13년인가 준비했다고 해요. 이영애도 14년만의 복귀작이어서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모두 으샤으샤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진유영은 ‘나를 찾아줘’를 시작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젊은 감독과 제작자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각오다. 휴화산이 폭발하듯 오랫동안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연기에 대한 열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나를 찾아줘’는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린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흥행이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뭐.(웃음) 아직 차기작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상업 영화이든 저예산 영화이든 상관없어요. 장르도 비중도 신경 쓰지 않고요. 재능 있는 젊은 후배들이 저를 원하면 저는 언제든지 촬영장에 달려갈 작정이에요. 그러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겠습니다.(웃음)”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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