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한 알파걸의 걸크러시는 이제 찾을 수 없었다. 영화 ‘해치지 않아’(감독 손재곤, 제작 어바웃필름)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는 직장에서 앞서가는 1등 사원보다 친근한 옆집 누나, 동네 언니 느낌이 강했다. 출세작인 드라마 ‘미생’의 안영이와 수많은 광고 속 세련되고 지적인 모습은 어디까지 만들어진 이미지였을 뿐이다. 영화 홍브를 위해 오랜만에 인터뷰에 나선 의 본모습은 자신을 잘 포장할 줄 모르는 소박하고 진솔한 사람이었다.

훈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해치지 않아’는 망하기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차게 원장으로 부임한 변호사 태수가 직원들과 함께 팔려간 동물들을 대신해 동물로 근무하면서 벌이지는 소동을 담은 코미디. 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최첨단 기술로 완성한 동물 탈을 쓰고 수사자(?) 행세를 하는 수의사 소원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매니저한테 곧장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정말 신박하고 매력적이었어요. 동물 탈은 어떻게 쓸지, CG 기술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궁금증은 별로 없었어요.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어요.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죠. 제가 원래 손재곤 감독님의 팬이었어요.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을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던 데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욕심이 더욱 났어요. 거기에 정말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니 더 행복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일반적인 배우가 연기생활을 하면서 동물을 연기한다는 건 매우 드문 경우. 는 ‘해치지 않아’ 출연을 결정한 이후 많은 영상과 자료를 보면서 수사자에 대한 공부를 했다. 영화 속 동물원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믿게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별 소용이 없었다. “가만히 배를 깔고 앉아 있는 장면이 대부분이었어요. 움직이지를 않으니 뭘 보여줄 게 없었어요. 감독님도 과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진지하게 상황에만 몰입하라고 말씀하셨죠. 사실 야생에서도 수사자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요. 암사자가 사냥을 다해오고 육아도 독박으로 한다더군요.(웃음) 동물 탈 연기는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무게가 정말 엄청났어요. 10~15킬로그램 정도나 되더라고요. 다행히 사자가 잘 움직이지를 않아 다른 배우들에 비해 전 수월하게 연기했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다른 배우들은 액션이 진짜 많거든요. 전여빈씨와 동물 탈을 함께 쓰고 휴식 시간에 앉아 있으니 정말 웃기더라고요. 개그 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 흉내를 내며 많이 웃었어요.(웃음)”

‘해치지 않아’는 러닝 타임 내내 포복절도할 웃음을 주면서 북극곰 까만코를 통해 동물의 권리에 대한 훈훈한 메시지도 전한다. 현재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는 ‘해치지 않아’를 촬영하면서 동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제가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많은 공부를 했죠. 동물관련 기관지도 읽고 영상도 봤어요.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려고요. 촬영 전 감독님, 배우들과 전국의 동물원들을 대부분 둘러봤어요.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동물들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지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좋았던 곳이요? 진주동물원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네요. 동물과 자연풍광이 잘 어우러져 있었어요.”

는 최근 몇 년간 배우로서 활동이 다소 주춤했다. 공백기도 길었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혹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을 터. 나이가 서른을 넘어서일까? 는 흔들리지 않았다. 데뷔 12년차 배우답게 훌훌 털고 혼자 일어서는 법을 터득한 것. 베테랑의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처음에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초조하고 두려운 순간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편해요. 많은 걸 내려놓고 저 자신을 비우게 됐어요. 쉬는 동안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연예인 에 올인하다 보니 인간 는 소홀히 여겼더라고요. 어차피 완벽하게 못하는데 뭘 그리 절 몰아세웠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저를 더 잘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직업도 중요하지만 제 자신이 더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모든 문제를 객관적으로 떨어져 볼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일도 이제 보니 별일 아니더라고요.”

의 올해 목표는 다작이다. 올해로 데뷔 12년차이지만 출연 작품 수가 적은 게 사실.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볼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해치지 않아’의 흥행이 절실하다. 제작사가 같기에 ‘해치지 않아’를 지난해 1600만 관객을 동원한 ‘극한직업’과 비교하는 시선이 있다. “‘해치지 않아’와 ‘극한직업’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결이 다른 영화예요. 다른 매력이 분명히 있어요. 정말 훈훈하고 재미있으니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감독이나 작가와 일하고 싶으냐고요? 글쎄요. 사실 제가 지금 감독이나 작가를 따질 처지는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요. 코미디도 다시 해보고 싶고 액션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보다 사건이나 상황이 아닌 사람이 보이는 인간미 물씬 나는 작품에 출연했으면 좋겠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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