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빈

볼 때마다 관객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잔뜩 심어주는 배우였다. 영화 ‘해치지 않아’(감독 손재곤, 제작 어바웃필름) 개봉을 앞둔 배우 은 매 작품 극명하게 다른 얼굴로 등장해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큰 미덕은 매 작품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보여주는 것일 터. 은 항상 이 배우의 한계는 어디까지고,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해치지 않아’는 파산 직전인 동물원 ‘동산파크’에 새로 원장으로 부임한 태수(안재홍)와 직원들이 빚 때문에 팔려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코미디. 은 동물원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에 동물 탈을 쓰고 ‘자이언트 나무늘보’로 변신하는 사육사 혜경 역을 맡았다. 소심하면서도 우유부단한 혜경은 에게는 다소 낯선 캐릭터.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친구를 버린 친구의 전 남편을 응징하기 위해 낫 들고 전력 질주하던 은정의 걸크러시는 찾을 수 없다. “매 작품 너무 달라 같은 사람인지 몰라볼 뻔했다”고 말하자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 배우에게 최고의 칭찬인데요. 배우 개인으로서 개성이 드러났다기보다 극 중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배우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잘했다는 이야기로 들려 기분 정말 좋네요. 그러나 어쩌면 관객들 뇌리에 각인이 안 되는 외모 때문일 수도 있어요.(웃음) 사실 요즘도 길가에 나가도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세요. ‘멜로가 체질’이 방송될 때 제주도에서 영화 촬영 중이었는데 그때 조금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전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혜경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다하는 소원도 매력적이죠. 그러나 혜경은 제가 이제까지 맡아본 적이 없는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어요.”

선입견을 갖고 봐서일까? ‘해치지 않아’는 영화가 공개된 후 출연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한 동물들의 높은 싱크로율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은 캐스팅 당시부터 나무늘보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손재곤 감독님의 팬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전화 오셨어요. 드라마 ‘구해줘’와 문소리 감독님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 나온 제 모습이 자신과 차를 마셨던 사람과 너무 달라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하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신인배우인 제가 뭐라고. 정말 감동이었죠. 그런데 동물원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나무늘보 역할이라고 하셔 영화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으니 정말 재미있어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은 ‘해치지 않아’서 달달한 멜로의 중심에 선다. 이기적인 남자친구 성민(장승조)과의 오래 된 연애에서는 이용만 당하며 질질 끌려 다니고 자신을 짝사랑하는 동료 사육사 건욱(김성오)의 마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역시 ‘멜로가 체질’인가 보다. 은 든든한 두 선배 김성오와 장승조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김성오 선배님과 첫 미팅 때 많이 긴장했어요. 워낙 센 역할들을 많이 하셔 무서울 줄 알았거든요. 선배님이 보자마자 저한테 ‘나무늘보와 닮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말에 무장 해제돼서 ‘선배님도 고릴라와 똑닮았다’고 말씀드렸죠. 장승조 선배님은 역할과 달리 매우 상냥하고 젠틀한 분이세요. 그런데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캐릭터를 정말 매력적으로 살려내시더라고요 고릴라가 나무늘보를 업는 어부바 장면 정말 사랑스럽죠? 제 최애장면이에요.”

은 충무로 ‘대세배우’답게 2020년에 ‘해치지 않아’를 시작으로 쉬지 않고 새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영화와 드라마 대본들이 소속사 사무실에 쏟아지고 있다. 오랜 기다림과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값진 결과물이다. “연기를 오랫동안 하고 싶었고. 갈망해왔기에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가고 싶었어요. 그래도 서른이 되기 전 자리를 못 잡는다면 재능이 없는 걸 인정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가족과 약속을 했었죠. 다행히 하늘이 도와줘서 좋은 작품을 만나 연기를 계속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해요. 저도 알아요. 지금은 일이 술술 풀려가는 듯하지만 몇 년 후에는 어려운 일도 닥치겠죠. 그래도 전 지금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해요.”

은 이제 확실히 스타덤에 올라 한 영화를 책임질 만한 주연 배우 반열에 올라섰지만 아직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인터뷰 내내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건 실제 인성의 영향인 듯하다. “인간 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영화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단편 영화제 트레일러를 찍은 적이 있어요. 명동에서 소 탈을 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역할인데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사람에게 밀려 넘어지는 설정이었어요. 그때 고양이 탈을 쓴 알바가 촬영인지도 모르고 달려와 저를 일으켜 주더라고요. 일으켜 주다 “여자잖아”라며 놀라더니 “힘내요”라고 말하고 가버리더라고요. 정말 영화적인 체험이었죠. 우린 촬영이었는데 미안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진심 어린 따뜻한 위로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아요. 저도 그 친구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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