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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따기’의 영화보기] ‘영화 제목’ 속에 숨겨진 재밌는 스토리

<국가의 탄생 (The Birth of Nation)> 흑인들의 위협성 강조위해 ‘국가’ 끌어 들여
  • 영화 ‘국가의 탄생’.
할리우드에서 공개됐던 세계 최초의 흑인 차별 영화로 낙인(?) 찍힌 작품이 바로 <국가의 탄생 The Birth of Nation>이다. 흠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사적 의미에다가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영화 매체가 본격적인 대중화 시대를 맞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D.W. 그리피스 감독이 1915년 발표한 이 작품은 미국의 남북 전쟁이 배경. 북부의 승리로 남북전쟁이 끝나지만 남과 북의 앙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인 여인이 흑인 병사의 겁탈을 피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분노한 여인의 오빠 벤은 KKK 단원이 된다. 이후 벤의 집은 흑인 부대에 의해 포위되고 죽음 직전까지 몰리다가 KKK단이 등장하면서 흑인들을 제압한다. 이러한 갈등 끝에 남과 북은 전격적인 재결합을 시도한다. 호쾌한 군중 장면을 위해 대규모 엑스트라 동원, 다이내믹한 편집 등 영화사에서는 무성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극중 흑인 강간범, 북군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이 공개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구 영화학계에서는 ‘최초의 스펙터클 작품, 오락으로서의 영화, 선전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 현대적인 의미의 블록버스터 효시 작 등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업적을 남겼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 1915년부터 1946년까지 미국을 제외한 해외에서 2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우드로 윌슨이 백악관에서 처음 관람한 상업 영화라는 기록을 추가시킨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업적 외에 남부 흑인에 대한 백인의 테러를 합리화시켜 흑인에 대한 차별 의식을 공공연히 부추긴 점이 최악의 아킬레스 건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것은 평생을 흑인들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역설했던 토머스 딕슨 목사의 <클랜즈맨>이라는 희극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막강한 번식력을 갖고 있는 흑인들이 백인 여성들을 차례대로 수탈해 멀지 않은 시기에 미국 전체가 흑인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설정은 당시 백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가상이었다. 애초 영화 제목도 원본을 따라 ‘클랜즈맨’으로 하려고 했지만 딕슨은 감독 그리피스에서 흑인들의 위협성을 드러내 주는 데는 약한 제목이라고 역설해 나라 전체의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국가’라는 단어를 삽입시켰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흑백간의 갈등이 촉발된 것은 1890년부터 1915년 사이 흑인들의 독립과 자치권을 주장하는 소위 ‘뉴 니그로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인종 간의 갈등이 서서히 발화점에 이르게 된다. 백인들은 자신들이 누려왔던 기득권과 함께 인종적인 우월성 그리고 흑인들에 대한 종속 관계를 영속화시키려는 복합적인 의도를 담은 ‘인종주의’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백인들의 자구 움직임에 따라 남부에서는 흑인들에 대한 시민권을 박탈하는 동시에 흑인들이 갖고 있던 부동산에 대한 방화를 가하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국가의 탄생>은 전형적인 농장주 집안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카메론 집안과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오스틴 스톤맨 집안의 대비되는 행적을 통해 단순한 흑인들의 힘을 활용해 남부에 독재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3시간에 걸친 상영 시간 내내 흑인들의 존재는 노예 해방으로 획득한 시민권을 악용, 백인 처녀들에 대한 추파, 과거 백인 주인을 결박하여 린치를 가하고 흑백 등 인종간의 결혼을 합법화시키는 법령이 공포되는 동안 닭을 뼈째로 먹어 치우면서 백인 정부에 조롱을 보내는 모습 등 시종 무뢰한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 스톤맨의 부하인 흑인 선동가 사일러스 린치는 부지사로 선출되자 스톤맨의 딸인 절름발이 처녀에게 결혼을 강요하면서 ‘나는 곧 흑인 제국을 세울 것이요, 그대가 내 옆에서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소’라는 당당한 주장을 내세우는 장면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민감한 내용 때문에 공개 직후 흑인 권익 단체들은 즉각 극장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동시에 정치권에 상영 중단 압력 행사에 들어간다. 반발 움직임에 따라 흑인이 백인 여성에게 성적인 폭행을 가하는 장면 등이 삭제되자 연출자 그리피스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 헌법의 취지를 훼손시키는 행동이라고 반발한다. 결국 <국가의 탄생>이 공개된 이후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의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등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다시 한번 노출되는 후유증을 남긴다. 감독 D.W.그리피스, 주연 릴리언 기시, 매 마시, 헨리 B.월탈, 미리엄 쿠퍼.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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