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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따기’의 영화보기] ‘영화 제목’ 속에 숨겨진 재밌는 스토리

  • 영화 ‘글루미 선데이’.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 자살을 부추기는 우울한 일요일

시인 라즐로 야보르는 사랑했던 여인의 자살 소식을 듣고 곧이어 자결했다는 내용을 담아 애초 제목은 ‘슬픈 일요일’. 1933년 시구절을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레죠 세레스가 선율을 더해서 ‘Gloomy Sunday’로 발표한다. 시종 우울한 곡조로 인해 노래를 듣고 자살을 선택한 청년들이 쏟아져 ‘헝가리 자살 노래’라는 별칭을 듣고 있다. 애초 제목은 ‘세상은 끝났다’. 1936년 영국에서 할 켐프에 이어 1941년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 버전이 발표되면서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성원을 받는다. 이 노래가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독일 출신 감독 롤프 슈벨이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 (1999)의 주제곡과 제목으로 다시 차용하면서 노래가 실제로 작곡됐다는 193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극이 펼쳐진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헝가리의 한 카페 겸 레스토랑.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미모의 여인과 레스토랑 주인, 무명의 작곡가 그리고 단골 손님이었고 후에 나치 장교가 되어 돌아온 사나이 등 한 여자를 두고 3명의 남자가 벌이는 연정을 짙고 음울한 가락의 테마 음악을 곁들여 펼쳐 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 작곡에 얽힌 사연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노래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노래가 발표된 지 2개월 만에 이 노래를 듣고 무려 150여명이나 되는 헝가리 젊은이들이 자살을 감행해 이후 이 노래는 ‘자살 찬가’라는 오명을 듣게 된다. 1936년 파리의 레이 벤추라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는 곡을 연주했던 단원들 중 일부가 공연이 끝난 직후 자살하는 사건이 겹쳐져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다.

이런 사건에 따라 <뉴욕 타임스>는 ‘수백 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르포 기사를 게재한다. 곡의 작곡자인 레조 세레스도 개인 신병을 비관해 1968년 1월 11일 부다페스트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 뉴욕 타임스는 ‘글루미 선데이의 오명을 추가시켰다’는 부고 기사를 보도한다. <글루미 선데이> 사운드트랙에는 헤더 노바와 엘비스 코스텔로, 빌리 할리데이, 루이 암스트롱까지 내로라 하는 가수 6명이 불러준 각기 다른 풍취를 전달해 주고 있는 곡이 골고루 수록된 것도 이채롭다. 테마곡은 영화 공개 직후 <시티 오브 엔젤>의 테마곡을 불러 주어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사라 맥라클란을 비롯해 신세대 최고 음악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 <어둠 속의 댄서>로 53회 칸 영화제 여우상을 따낸 뷰욕 등이 연이어 취입, 노래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부추겨 주었다. 해외 팝계에서는 한때 롤링 스톤 그룹 리더인 믹 재거와 연인 관계였다가 헤어지고 난 뒤 마약에 빠져 불운한 중년의 세월을 보냈던 마리안 페이스풀이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을 담은 듯한 음색으로 불러주고 있는 곡도 잔잔한 감동을 자극시켰다.

마리안 페이스풀은 17세 때인 1964년. 롤링 스톤의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가 작곡, 작사해 준 ‘As Tears Go By’로 벼락 스타가 된 가수. 그녀는 여섯 살 때 양친이 이혼을 하는 바람에 어려서 부터 험난한 인생살이를 해왔는데 가수가 된 뒤로는 롤링 스톤의 주요 멤버들과 차례로 동거하다가 결국 버림받은 뒤 마약, 약물 중독, 술 등에 탐닉하다 수차례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호사가들이 구미를 당겨주는 스캔들메이커로 전락했다. 그 후 그녀는 주위 동료들의 끈질긴 보살핌 덕분에 1987년 극적으로 재기해 다시 팝계로 컴백, 자신의 지난 세월을 상징해 주고 있는 듯한 ‘글루미 선데이’로 다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노래는 그 후 재즈 가수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선택된 것을 비롯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엘비스 코스텔로, 레이 찰스, 톰 존스, 시너드 오코너 등이 자신들만의 음악적인 특성을 살려 취입할 정도로 각광 받고 있다.

  • 영화 ‘기요틴’.
<기요틴(guillotine)> 고통 없는 처형 도구

인간 신체 부위 중 목 부분을 단번에 제거하는 처형 도구. 단두대로 알려져 있다. 1792년 4월 ‘사형수에게 고통 없는 처형의 기회를 줄 것이다’는 명분을 내걸고 프랑스 의사 조제프 이냐스 기요틴(1738~1814)이 공개한다. 오래 전부터 전래된 처형 도구는 프랑스 혁명 당시 매우 요긴한 처형 도구가 되면서 발명가의 이름을 따서 ‘기요틴’이라고 명명된 것으로 알려진다. ‘기요틴’은 <외팔이 검객>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홍콩 배우 왕우가 주연 겸 감독을 맡은 <독비권왕 대 파혈적자>(1976)에서 제목으로 차용된 뒤 <음양혈적자>(1977), <단두대>(1989), <혈적자: 황제 암살단 >(2012) 등 정치 혹은 사회 드라마에서 복수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단두대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널리 사용되면서 알려지게 됐으며 1789년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의사 J. I. 기요틴이 발명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전부터 프랑스 남부 지방과 이태리에서 사용되어 온 기구’라고 정의해 주고 있다. 기요틴을 개발한 기요틴 자신도 이 기구로 처형됐다는 설이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로 기록되고 있다. 기요틴은 두꺼운 널빤지 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위에 밧줄로 세모꼴 칼을 매달았다. 사형수가 널빤지 위에 엎드려 기둥 사이로 목을 내밀면 칼이 떨어져 목을 자르게 된다.

힘 안 들이고 목을 자를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공포 정치 시대 프랑스에서는 대량 살인 도구로 활용된다. 루이 16세, 마리 앙트와네트, 로베스 피에르 등이 기요틴으로 처형된 유명 인사이다. 1977년 9월 10일 프랑스에서 사형수 하미다 단도우비가 처형된 것이 마지막이며 1981년 프랑스에서는 사법적 처단 도구로 더 이상 사용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은행 강도 혐의로 12년 형기를 마친 수감자가 암흑가 조직원들과 형사들의 농간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뒤 결국 기요틴으로 처형된다는 호세 지오바니 감독의 <암흑가의 두 사람>(1973)에서 소품으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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