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범과 대화록 공개… 경찰에 결정적 증거 제공

하정우. 워크하우스 컴퍼니

배우 하정우가 지난해 12월 휴대폰 해킹을 당한 뒤 해킹범으로부터 한 달여간 협박을 받았지만 해당 사실을 인지한 이후 경찰에 즉각적인 제보 및 해킹범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수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0일 연예 매체 디스패치는 하정우와 해킹범이 나눈 대화록의 일부를 재구성해 보도했다.

해커가 하정우에게 첫 협박 메시지를 보낸 시점은 지난해 12월 2일이다. 해킹범은 자신을 ‘고호’라고 불러달라며 직접 해킹한 사진첩, 주소록, 문자 등이 포함된 다수의 파일을 전송한 뒤 “제가 금전이 급히 필요한 상황이고 합의보시면 모든 자료는 깨끗이 폐기하겠다”며 돈을 요구해왔다. 해커는 다량의 파일과 돈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낸 뒤 하정우의 답이 없자 이튿날인 3일 다시 문자를 보내며 금전을 요구했다. 해커에게 연락이 온 둘째 날에야 협박이 실제 상황임을 알아차린 하정우는 처음으로 해커에게 “성실히 진행할테니 재촉하거나 몰아붙이지 말아달라”고 첫 답을 보냈다. 해커가 하정우에게 보낸 자료는 신분증 사본과 금융 기록, 지인과 주고 받은 사진과 문자 등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하정우는 해커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정보의 유출을 막자는 생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해커에 대한 정보 또한 파악하기 위해 몇가지 질문도 덧붙였다. 해커는 해킹 방법에 대해 “폰은 복제한 것과 같다”며 자신이 메일 등 코드에 대한 전문가이고 자신의 위치를 추적하면 전 세계의 각지방으로 표시된다며 최소한의 정보를 흘렸다. 3일째 해커는 “배우, 가수, 방송인, 정치인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며 해킹 자료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이미 거액을 받았다고 덧붙이며 하정우에게 “생각한 금액은 15억 좌우’라며 거액의 금액을 요구했다. 자신 외에도 수많은 연예인들이 유사한 협박을 이미 받았거나 받는 중이고 심지어 돈까지 건넸다는 협박범의 이야기는 하정우가 경찰에 해당 사안을 신고하는데 가장 큰 결심의 계기가 됐다. 유명세를 악용한 악질적이고 조직적 범죄라고 판단했고 해킹 대상이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로 번질 우려도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 후 신고를 결심하게 됐다. 해커에게 연락을 받은지 4일 만인 12월 5일 하정우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휴대폰을 수사대에 맡겨 포렌식 분석까지 의뢰했다. 해킹범이 해킹을 한 흔적과 범죄의 수법을 찾는 게 먼저라 생각한 것이다.

이후에도 해커의 연락은 계속됐다. 하정우는 협상을 빌미로 시간을 끌었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해커에 요구를 하거나 해커가 흘릴 단서를 찾기 위해 그를 도발하기도 했다. 13억으로 금액을 낮추겠다는 해커에게 “13억이 무슨 개 이름이냐”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오돌뼈처럼 살고 있다” “(그렇게 큰 돈은) 무밭 배밭 다 팔아야 한다” 등 감정 섞인 발언으로 대응하는가 하면 펭수 이모티콘과 고양이 이미지를 보내며 여유 넘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일주일 넘게 해커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하정우는 해커가 과거 특정한 시기 이전의 자료들을 가지고 협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자신이 받은 이메일에서 휴대폰 계정 로그인 메시지 알림을 찾아내 해당 자료를 경찰에 제출했다. 이는 해커의 범죄 수법을 파악하는 단서가 됐고 경찰은 해커의 결정적 IP를 확보하게 됐다. 하정우의 신고를 통해 경찰은 여러 명의 연예인과 유명인들의 휴대폰 정보를 해킹해 동시 다발적으로 협박하고 있던 범죄의 해결 실마리를 가지게 됐다. 해커는 최종 12억을 합의금으로 제시하며 영화 ‘백두산’의 개봉일인 19일을 디데이로 못박고 협상에 최종적으로 응하지 않으면 공격모드로 전환하겠다는 최후 통첩도 보냈지만 하정우는 더 이상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해커의 정체를 특정했기 때문. ‘고호’를 포함한 해커 일당은 유명인의 휴대전화 정보를 해킹해 연예인 8명을 협박했고 5명으로부터 6억 1000만 원을 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검찰은 해커 일당을 붙잡았고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변필건)는 박모(40)씨와 김모(31)씨 등 2명을 공갈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하정우 소속사 측은 하정우가 해킹 사건으로 여론의 관심권에 올랐을 때 침묵해야 했던 사정을 뒤늦게 밝혔다. 워크하우스 컴퍼니의 한 관계자는 22일 주간한국에 “범인이 모두 잡힌 게 아니다.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려웠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최대한 수사 기관에서 정밀한 수사를 진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됐다. 마지막 범인이 검거되는 그날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방송가 관계자들은 “하정우가 신고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연예인들이 개인 정보를 유출시키겠다는 협박받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도주 중인 ‘고호’ 혹은 또 다른 해커 등이 앞으로도 유사한 해킹을 이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누군가일 수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스마트폰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공식 앱 마켓이 아닌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을 설치하지 말 것, 단문 문자(또는 소셜미디어) 메시지에 포함된 URL 클릭하지 말 것, 와이파이 연결 시 제공자 불분명한 공유기를 이용하지 말 것 등 다수의 사항을 권고했다. 유독 스마트폰 정보보호를 위한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다.

모신정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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