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은 유난히 어두운 한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 전반이 꽁꽁 얼어붙었고 이는 대중문화계와 방송가에도 직격탄을 뿌렸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우울감을 뒤로 한 채 웃으며 잠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건 MBC ‘놀면 뭐하니?’(이하 ‘놀면 뭐하니’)와 TV 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의 압도적인 열풍 덕이었다.

TV조선 ‘미스트롯’에서 이어진 ‘미스터트롯’의 선풍적인 인기에서 시작된 트로트의 인기를 비롯해,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열풍으로 번져나간 MBC ‘놀면 뭐하니’의 여름 음악 등이 침체된 분위기에 흥을 돋우는 촉매제가 됐다. 또 이러한 음악 예능의 강세는 새해에도 여전히 계속 될 분위기다. 지난해 돋보였던 이들의 행보와 지금도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조명해본다.

놀면 뭐하니. MBC

유산슬부터 싹쓰리까지…‘놀면 뭐하니’의 부캐 열풍

MBC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는 지난해 가요계에 대격변을 일으켰다. 유재석은 앞서 트로트가수 유산슬로 변신해 부캐 열풍의 신호탄을 쏜바 있다. ‘놀면 뭐하니’ 측은 지난 여름 유재석을 포함해 가수 이효리, 비 등 2000년대를 풍미한 스타를 영입해 혼성그룹 ‘싹쓰리’를 결성했다. 유재석은 ‘유드래곤', 이효리는 ‘린다 지’, 비는 ‘비룡’으로 각각 활동명을 정해 부캐 활동을 펼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신곡 ‘다시 여기 바닷가’, ‘그 여름을 틀어줘’는 각종 음원 차트에서 최정상을 차지했고, 음악 방송에서도 콘셉트에 맞는 무대를 선보이며 1990년대 여름송의 감동을 재현해냈다. 흐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로 이뤄진 ‘환불원정대’가 각각 부캐 만옥, 천옥, 은비, 실비로 분해 2연타 흥행에 성공한 것. ‘돈터치미’는 걸크러쉬의 대명사로 불리며 오랜 기간 리스너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다시 뭉친 ‘놀면 뭐하니’는 방영 초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 세대를 막론하고 토요일 저녁 시청자들이 안방극장 앞에 모여들게 만드는 MBC의 대표 효자 상품이 됐다.

유산슬.MBC

방송가의 새 흐름을 주도한 유재석은 지난해 연말 열린 ‘2020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유재석은 “어떤 프로그램을 할 때 ‘자신 있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해 본 적은 없다. 늘 속으로 다짐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결과가 됐든 받아들이고 내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으로 ‘놀면 뭐하니’도 시작했고 결국 큰 상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미스터트롯.TV조선

TV조선 역사 바꾼 ‘미스터트롯’, 트로트 인기는 계속

2019년 ‘미스트롯’으로 시작된 트로트의 인기는 2020년에도 여전했다. 특히 남성 출연자들이 나섰던 ‘미스터 트롯’은 최고 35.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TV조선 역대 최고의 성과를 이끌었다. 우승자 임영웅을 비롯해 영탁, 김호중,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등이 남부럽지 않은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임영웅은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발표한 2020년 네이버 최다 검색어 인물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한국갤럽 조사 '2020년 올해를 빛낸 가수'에 40대 이상에서 36.9%로 1위를 차지하며 2020년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은 스타 대열에 올라섰다. 시청률 보증수표로 올라선 그를 향한 광고계의 러브콜 또한 뜨겁다. 자동차, 화장품, 피자, 치킨 등 전 분야를 막론하고 그를 모델로 기용한 광고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스터트롯’의 거센 열풍에 놀란 타 방송사들 또한 트로트 프로그램을 신설하며 열기에 동참했다. SBS ‘트롯신이 떴다’, MBN ‘보이스트롯’, MBC ‘트로트의 민족’, MBC 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이 줄줄이 이어지며 포화 상태에 이르기도 했지만 ‘미스터 트롯’에 버금가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지난 12월 첫방송된 KBS 2TV ‘트롯 전국체전’만이 16% 이상의 시청률로 유의미한 마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다.

2021년에도 계속되는 음악 예능 전성시대

해가 바뀌었지만 대세의 흐름은 아직도 계속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첫방송된 ‘미스트롯 시즌2’가 30% 시청률을 벌써부터 넘어서며 TV조선의 흥행 보증수표 시리즈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영상 누적 조회수는 1천만회가 넘었으며, 최근에는 시국에 발맞춰 언택트 판정단을 모집하며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JTBC ‘싱어게인’도 매회 뜨거운 화제를 모으는 오디션 음악 예능이다. 그동안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혹은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가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출연자들의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며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름 모를 가수들에 흥미를 느끼고, 화제가 된 출연진의 이름은 역설적으로 더욱 강하게 각인된다.

TV조선에 도전장을 내민 KBS 2TV ‘트롯전국체전’도 뜨겁다. 남진, 고두심, 김수희, 설운도, 조항조, 김범룡, 김연자, 주현미 등으로 이어지는 감독들의 라인업을 시작으로, 전국 8개 지역을 나눠 경연을 진행한다는 콘셉트가 눈에 띈다. 트로트는 노래에서 지역 색이 묻어나는 장르인 만큼 사투리가 포함된 가사 등 고유의 매력을 가진다는 게 특색이다. 나아가 경쟁이 아니라 지역 통합을 목표로 하며 지친 국민들에게 힐링을 선사하고 있다.



김두연 스포츠한국 기자 dyhero213@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