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지민. BH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민(39)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배우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의 상아,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의 조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 ‘해피 뉴 이어’(감독 곽재용)의 소진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인 선택이었다.

오랜 친구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여자,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캐릭터도 한지민의 연기와 만나 선명해졌다.

‘해피 뉴 이어’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달 29일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되자마자 전체 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 티빙 인기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혔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개인적으로 많이 침체돼 있고 마음이 좋지 않은 시기였어요. 작품 선택할 때마다 그때 제 상태가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자극적인 요소는 없지만 무난하고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영화를 보고 싶더라고요.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관객 분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했죠. 우리가 기억하는 연말이 있잖아요. 저는 지하철 역 앞에서 파는 군고구마랑 풀빵, 흘러나오는 노래, 북적북적한 길거리가 떠오르거든요. 요즘 그런 풍경을 보기가 어려운데 ‘해피 뉴 이어’에는 겨울이 주는 설렘이 잘 담겨서 꼭 하고 싶었어요.”

한지민이 연기한 소진은 호텔 엠로스의 매니저로, 15년째 친구인 승효(김영광)를 좋아하면서도 고백을 망설이는 인물이다.

승효는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영주(고성희)와의 깜짝 결혼을 발표해 또 한 번 소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감독님께서 만화적인 표정들을 주문하셔서 과하지 않게 그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미쓰백’ 때 워낙 내추럴하게 나와서 예쁘게 나올 수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웃음) 제 영화 중 가장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소진은 예뻐야 하는 캐릭터라 머리카락이 한 올만 엉켜도 모두가 달려와서 만져주셨어요. 모두의 노력으로 예쁘게 나올 수 있었답니다. 그래도 연기 잘한다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예쁜 건 광고나 화보에서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작품에서만큼은 연기 잘했다는 칭찬이 가장 감사하고 행복해요.”

한지민은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친구를 짝사랑하는 소진의 애틋한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응을 얻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사랑 이야기지만 한지민만의 감성이 더해진 캐릭터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한편으론 한지민에게 짝사랑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한지민은 “실제로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을 했다”며 웃었다.

“누굴 좋아해도 고백은 당연히 못하고 멀리서 쳐다보기만 했어요. 성인이 돼서도 똑같아요. 누가 마음에 들어도 혹시 거절당하거나 어색해질까봐 표현은 못하는 편이에요. 소진을 연기하면서 짝사랑할 때의 디테일한 감정들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일단 승효랑은 15년 된 친구라서 함께 있으면 편안함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이랑 다 같이 있지만 모든 신경이 승효의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 쏠려 있는 느낌도 중요했고요. 예를 들어 승효가 ‘요즘 연애하나봐, 미모 성수기네?’ 할 때 부끄러워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소진의 미묘한 표정 하나까지 살리려고 노력했죠. 주변에서 많은 반응을 보내왔는데 특히 ‘미쓰백’에 함께 출연했던 김시아 양이 ‘언니, 승효 같은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마세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더라고요. 저한테는 아직도 꼬마 같은데 너무 웃었어요.”

극 후반 소진은 승효를 향한 오랜 마음을 내려놓고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그리고 매주 호텔 라운지로 맞선을 보러오던 진호(이진욱)와 새로운 인연을 암시하면서 해피엔딩을 맞았다.

“진호와의 결말은 매우 만족했어요. 누군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게 참 설레던데요. 또 진호의 고백을 받는 소진을 보면서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고 인연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마음이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고 서로의 인연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사랑을 이루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막상 사랑하면 잘 표현하는데 사랑을 하기까지 망설이는 편이어서 앞으로 마음에 드는 누군가가 생긴다면 용기를 좀 내보려고요.”

‘해피 뉴 이어’는 2년째 이어진 팬데믹에 지친 관객들에게 힐링을 안겼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연말 분위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응원이 됐다.

한지민에게도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다독여준 작품으로 남았다.

마음의 문을 닫고 외롭게 사는 ‘미쓰백’의 상아, 난생 처음 사랑의 설렘과 불안을 느끼는 ‘조제’의 조제 등 무게감 있는 감정 연기들을 소화했던 그에게 소진의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새롭게 나아갈 동력을 선사했다.

‘해피 뉴 이어’로 힘을 얻은 한지민은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연출 김규태)와 이준익 감독의 티빙 오리지널 ‘욘더’로 돌아온다.

“‘해피 뉴 이어’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선택한 작품이에요. 보통 작품 고를 때 고민이 많은데 이번엔 달랐어요.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시기에 집에 혼자 있기보다 다양한 배우들 사이에 섞여서 힐링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죠. 돌아보면 잘한 일 같아요. 늘 전전긍긍할 때가 많았는데 그래도 과감한 선택들을 해온 것 역시 잘한 것 같고요. 새해 소망이요? 앞으로도 큰 계획은 없어요. 하지만 때가 왔을 때 용기 낼 수 있는 사람이길, 또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