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삐라 둘러싸고 남남갈등 심화

“개성공단의 수많은 입주기업 생사가 달려있는 문제다. 자제해 달라”

“대남전술에 놀아나지 말라. 2004년부터 뿌린 삐라 배포를 이제와서 중단하라는 게 앞뒤가 맞느냐”

19일 오후 3시 장관 명의의 삐라 살포 자제 요청 공문을 들고 서울 거여동 자유북한운동연합 사무실을 방문한 통일부 담당국장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나눈 대화다.

북한이 반북 민간단체들의 ‘삐라’ 살포를 문제 삼아 개성공단 입주기업 철수, 금강산 관광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를 둘러싼 반북 단체와 정부간의 남남갈등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대북 삐라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며 북측이 이제와서 문제 삼는 것은 ‘선전선동’에 불과하므로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게 반북단체의 기본입장이다.

19일 오전 자유북한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박상학 대표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사무실에는 수만장의 비닐삐라를 담은 포대 수십개가 놓여있었다. 다음날 오랜만에 남서풍이 불 예정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고무된 박 대표는 북으로 ‘삐라’를 날릴 수 있는 호기라며 쾌재를 불렀다. 그는 헬륨 가스를 준비하는 등 북으로 삐라를 실은 애드벌룬을 날릴 준비를 하느라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오후 3시께 방문하겠다는 통일부 관계자의 전화였다.

박 대표는“우리가 보내는 전단지는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으로서 정착생활을 통해 체험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부모형제들에게 전달해 주는 내용”이라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을 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출판, 보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사안을 이분법적으로 보고 있었다. 박 대표는 “이 싸움은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자와 거짓을 말하는 자 간의 싸움”이라며 “친북좌파로 불린 전 정권마저 하지 않는 짓을 하는 현 정부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힐난했다.

“남북관계 경색의 우려 때문에 민간 단체들의 대북삐라 살포는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통일부의 기본 입장이다. 통일부 내 삐라 담당 부서인 인도기획협력과의 구병삼 사무관은 19일 통화에서 “물론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삐라 살포가) 외교관계에서 적절치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민간단체에서 욕 하고 여자문제와 같은 비리 문제를 삐라로 날린다면 정부가 가만 놔둘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구 사무관은 이어 “당국간의 합의가 민간까지 규율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국간의 합의의 정신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며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위기나 남북관계의 추가적인 정치적 여파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민간차원의 삐라살포 중단을 당부했다.

한편, 자유북한운동연합과 납북자가족모임은 20일 경기 김포시 한 야산에서 10만장의 대북삐라 살포를 강행했으며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유감을 표명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