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정부때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97년 2월~12월), DJ때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2001년1월~2002년1월), MH 정부때 대한적십자사 총재(2004년12월~2007년12월)를 지낸 한완상 <전 서울대교수. 서울대 사회학과졸(1960년), 미국 에모리 대학 석.박사(64년,67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70-76년), 1차 해직(76년), 본직(80년), 김대중 내란응모 체포.2차해직(80년10월). 본직(84년), 새길교회 창립(87년), 민중사회학(84년), 등 18권 씀> 그는 12월 2일 처음으로 인세를 받고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냈다.

‘예수 없는…’에는 그가 모태 기독교인으로, 사회학 전공 교수로,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로 느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그 나름의 종교관, 세계관, 정치철학, 특히 남.북관계대책을 집약 했다.

그의 예수에 대한 믿음이 책 곳곳에 가득 들어 있으나 ‘예수 없는…’에는 남.북문제도 깔끔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책 출판 기자 간담회에서 남.북간에 10, 11월에 벌어진 대결 고착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Y.S때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나에게 대북정책을 어떻게 끌고 가야하는지 묻자 나는 명쾌하게 답변했다. “저도 교회 장로이고, 대통령도 교회 장로이니까 대북정책은 예수님 답게 하자.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자.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이 우리의 주적으로 돼 있지만 경제력은 14배나 차이가 난다. 우리에게는 북한을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이런 예를 들면서 오늘의 남.북 현안을 풀 나름의 방안을 제시 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장로이고, 나도 장로이고, 이명박 대통령도 장로다. 이것으로 답변을 대신 하겠다.”>>

그는 ‘예수없는…’에서 그가 펼치고 있는 ‘평화의 주창자로서의 예수’, ‘승리보다 지면서도 이기는 것을 좋아한 예수’, ‘악마와 천사로 나누는 종교(기본원리)보다 사람으로 마음을 채우는 예수’의 신앙을 MB정부는 북에 펼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는 YS정부때 통일원 장관으로 1993년 10월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를 북송하게 된 전후를 책에서 적고 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민주화운동에 계속 관심을 갖고 김대중, 김영삼 두 김씨를 도왔습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일 부총리로 부름을 받았고, 한반도 냉전정책을 펼치기 위해 당시 현안이었던 이인모씨를 북송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결과 냉전근본주의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난날 들판에서 외롭고 괴롭게 군사정권에 대항할 때 받았던 공격과 비난보다 더 음흉하고 아픈 공격 이었습니다.

정부 종합청사에 있는 통일부총리 집무실에서 저는 들판 낮은 곳에 있을 때보다 더 불안했습니다. 남산 지하실과 서대문 감옥에 있을 때 보다 더 외롭고 더 괴로웠습니다. 정부 안팎의 냉전 세력들의 색깔공략이 참으로 드세었기 때문 입니다.

이때 비록 한국교회는 저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으나, 저는 샬롬(평화)의 예수에게 더욱 의존할 수 있었습니다. 두터운 냉전 빙벽을 깨고 그것을 녹이는 하나님의 평화가 따뜻한 ‘햇살’로 우리를 보호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평화의 강물이 한강물과 대동강물처럼 남.북으로 가로질러 도도하게 흐르게 하기 위해 ‘햇볕정책’을 과감히 시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웠으며, 제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제 속에 계속 살아계신 듯 했습니다.>>

DJ정부의 ‘햇볕정책’이 나오기전 그는 하나님의 ‘햇살’로 된 예수의 ‘햇볕’정책을 꿈꾸고 있었다.

한완상 전 통일원 장관은 DJ가 6.15 남북 정상회담을 한 후 북한 참관단으로 2000년 10월 북한에 갔다. 교육 부총리가 된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그때 그가 본 북한을 요약한다.

<<…대체로 북한사회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하나는 항일유격대 정신으로 살아가는 유격대 국가의 특징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정국가(神政國家)의 특징입니다. 이같은 특징은 북한동포들로 하여금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듭니다. 달리 말하자면, 북한은 하나의 거대한 교회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거대한 교회 같을까요? 그것도 그리스도인의 믿음보다 더 강한 믿음을 지닌 교인 같을까요? 남과 북이 자기식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으려면 어떤 각오를 해야 할까요?

먼저 눈에 확 띄는 북한의 글귀. 여기저기 중요한 곳에 걸려 있는 표어를 보겠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글귀를 보자마자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저절로 상기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러 날에 걸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서는 승천하실 때 남기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김일성 주석은 사망했지만 북한 동포의 마음속에 살아있을뿐 아니라, 항상 그들과 함께 있어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는 믿음이 확고해 보였습니다. … 김일성 대학을 두차례 지나가면서 퍽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학의 고층 건물 높은 곳에 예의 그 표어가 붙어 있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최고학부인 김일성 대학도 신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북한을 ‘侍鄭‘ 국가로 본 것을 신학자이기도 한 한완상 전 교수의 예수 믿음에 대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 느낌, 믿음이 개신교의 장로인 YS나 MB에게는 통할까? 서울은 평양에 지면서도 이기는 길은 없을까. 세 장로는 한번 鼎談(정담)을 나눠보길 바란다.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함께 읽으며.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