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 지음/ 양혜윤 옮김/세시 펴냄/ 9,500원아쿠타가와 류노스케등 8人의 대표작가 단편 모음집

2000년대 중반 한창 일본 소설이 붐을 이룬 적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와 에쿠니 가오리 가 쓴 연애소설에 빠지는 20대 청춘이 있는가 하면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장르문학에 심취한 독자도 많았다.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일본 소설이 한국 소설보다 훨씬 재밌다”였다. 섬세한 표현과 탄탄한 플롯구조, 만화 같은 인물이 소설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인기 있고 책도 잘 팔리는 작가들이 문학상은 못 받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찰라 한 문학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

“당연하죠. 지금 국내 인기 있는 일본 소설은 본격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학이니까요.”

이 평론가는 국내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무라카미 하루키마저도 일본 내에서는 대중문학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독자들은 일본 문학의 정수가 아닌 변형을 보고 열광하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신간 <일본 대표작가 대표소설>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 책은 일본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8명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 일본 문학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들의 단편을 실었다.

하야시 후미코는 일본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이 책에 실린 ‘슬픈 연인’은 돈을 벌기위해 시베리아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리요와 전쟁 때문에 아내가 바람난 츠루이시의 짧은 만남을 그린 소설이다.

리요는 생계를 위해 녹차를 팔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도중 츠루이시를 만나게 되고 츠루이시의 아이를 사이에 두고 여관에서 하룻밤 같이 보내게 된다. 그러나 츠루이시는 곧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그의 죽음을 보며 리요는 정작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시베리아로 떠난 남편이 아닌 츠루이시임을 알게 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과 다양한 문체로 문단의 확고한 지위를 세웠지만,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자살한 비운의 소설가다. 그의 이름을 딴 아쿠타가와 상은 일본 최고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책에 실린 ‘두자춘’은 신선이 되고자 했던 두자춘이란 인물에 관한 몽상적인 소설. 두자춘은 신선이 되려면 마귀의 물음에 대답하지 말라는 충고를 받지만 부모가 자신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신선 대신 평범한 삶을 택한다.

기쿠치 간은 50편의 장편소설을 쓰며 신현실주의 문학의 새 문을 연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작가. 책에 소개된 ‘무명작가의 일기’는 1918년 도쿄제국대를 졸업하고 발표한 단편으로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출세작이다.

‘한 명의 천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 밑에서 짓이겨 진다’는 주제로 무명작가의 일기를 시간대 별로 구성했다. 작품 속 무명작가는 결국 평범한 삶을 택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밖에 구니키타 돗포의 ‘겐 노인’, 다자이 오사무의 ‘여치’, 나츠케 소세키의 ‘열흘 밤의 꿈’ 요코미츠 리이치의 ‘시간’등이 담겨있다. 짧은 호흡에 담긴 다양한 인간 군상은 그만큼 다채로운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중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단편’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본 문학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