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전자적 조건과 비만, 당뇨 등 현대병의 상관관계 규명피에르 베일 지음/ 양영란 옮김/ 궁리 펴냄/ 1만5,000원

디젤 자동차에 가솔린 연료를 주입하거나, 반대로 가솔린 자동차에 디젤 연료를 주입한다면? 반드시 탈난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다. 채식주의자가 기름진 육식을 하거나, 고기를 즐기는 사람이 풀만 뜯게 되면 그 역시 몸에 고장이 나게 돼 있다.

이런 이야기는 물론 상식에 속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분명한 원리를 담고 있다. 에너지를 쓰는 주체와 에너지원 사이에는 본연의 ‘궁합’이 있다는 점이다.

농업생산 방식과 인체 건강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프랑스의 저명한 농공(農工)학자 피에르 베일은 이 책에서 현대인의 많은 질병이 잘못된 섭생에서 비롯했음을 과학적인 분석과 풍부한 예시로 밝혀내고 있다.

물론 음식과 건강의 긴밀한 연관성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인류의 ‘유전자적 조건’과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 사이에 오늘날 매우 큰 부조화가 빚어짐으로써 비만, 당뇨, 심혈관계 질환 등과 같은 ‘현대병’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그의 논지에 이르면 머리카락이 쭈뼛해진다.

현생 인류의 가장 가까운 조상은 크로마뇽인으로 알려져 있다. 2만 년 전쯤 지구상에 살았던 그들과 현대인들의 유전자는 거의 같다. 유전자는 조상의 특성과 형질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로 어지간한 세월에는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

문제는 오늘날 인류의 몸은 오랜 옛날의 유전자적 특성에 머물러 있지만, 먹는 음식은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첨단의 변화를 겪어 왔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녹슨 4기통 자동차에 최고급 6기통 엔진을 얹어 놓은 셈이랄까. 언뜻 생각하면 신날 것 같지만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속’하면 반드시 사고를 당하게 돼 있다.

수렵시대와 농경시대를 거치면서 인류는 빈궁기를 대비해 가급적 영양소를 체내에 비축하려는 유전자를 대대로 전해 왔다. 그 유전자는 물론 현대인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졌다.

그런데 대다수 현대인들은 이제 사냥이나 채집, 농사 등 에너지 소모가 많은 고된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배가 고프면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깔린 식료품 가게에 잠깐 들러 지갑만 열면 된다. 자연스레 열량 소비가 급감하면서 잉여 열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효율과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적 시스템’을 통해 생산되는 음식 자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필요 이상의 과도한 영양소가 들어 있다.

저자는 오메가 6와 오메가 3을 한 가지 예로 든다. 둘은 모두 인체에 필수적인 지방산인데, 오메가 6은 남는 지방을 비축하고 오메가 3은 남는 지방을 연소하는 역할을 한다. 두 지방산의 체내 비율은 5대 1일 때 가장 이상적이며, 이는 선사시대부터 거의 깨지지 않은 ‘황금률’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대인은 오메가 6을 오메가 3보다 평균 20배 가량 많이 섭취하고 있다. 이 같은 두 지방산의 불균형은 체내의 에너지 균형을 파괴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즉 아무리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해도 인체의 지방 비축 성향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서구사회뿐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비만 현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와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현대인이 당면한 섭생의 위기를 저자는 ‘나이든 유전자와 새로운 음식물의 세대차’라고 규정한다. 문제가 있으면 해답도 있는 법. 피에르 베일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 우선 생산자는 생태계를 존중하는 농축산업으로 먹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소비자는 먹는 즐거움과 건강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운동화 한 켤레다. 틈날 때마다 걷고 달리는 것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