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다 다른 문체 고안 등 작품과 유년시절 이야기로 2시간 문학산책

소설가 김훈이 지난 12일 저녁 독자와 만남을 가졌다. 예스24와 상상마당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행사에서 작가는 30여 명의 독자와 함께 자신의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한 말을 좋아하는 그는 독자들에게 “중언부언하는 질문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준비한 원고를 읽고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말은 짧고 선 굵은 그의 문장과 닮은꼴이었다.

“오늘은 글을 안 쓰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주희의 <근사록>과 퇴계의 <퇴계록>을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주희의 <근사록>에는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모습이 같다면 구태여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구절이 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언급하며 책 속의 진리가 인간의 존재와 현실로 연장될 수 없다면 그 진리란 공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 속에서 한 글자씩 써나가겠다는 말로 인사를 마쳤다.

10여 분의 원고 발표 후 독자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독자들의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은 <칼의 노래><남한산성> 등에서 보인 작가 특유의 문체에 관한 것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은 ‘독특한 문체에 도달한 비법’과 ‘문장론’에 대해 질문했다. 김훈 작가는 “비법은 없고, 전략은 있다”고 말했다.

“저는 소설마다 다른 문체를 썼습니다. 주제에 입각한 문체를 고안해 내야 하는 것이죠. <칼의 노래>의 경우 그 문체는 매우 빠르고 급박하게 휘젓고 들어가는 휘모리장단의 것이지요. <현의 노래>의 경우에는 중모리장단 정도를 쓴 거예요. 주제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문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는 <칼의 노래>를 쓸 때 한 동작 안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군인의 문장을 쓰고 싶었노라고 덧붙였다.

지난 11월 <바다의 기별>을 내고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터라 이 자리에서는 신간에 관한 질문도 쏟아졌다. <바다의 기별>은 기자 시절 겪었던 일화와 유년 시절에 대한 소회 등을 엮은 산문집이다. 독자들은 책 내용에 관한 것은 물론, ‘에세이와 소설을 쓸 때 차이점’을 물어보기도 했다.

“에세이는 1인칭 자아를 자유롭게 드러내면 되는 것이죠. 소설은 작가의 정서나 사유를 등장인물을 통해 객관화 시키는 3인칭 장르입니다. 따라서 에세이와 소설은 1인칭과 3인칭 인간의 차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나아가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객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죠. 저는 아직 3인칭의 세계(소설)를 잘 못 쓰는 것 같아요.”

약 2시간에 걸쳐 문학작품과 유년시절, 아버지 등에 관해 말하던 작가는 마지막으로 올 상반기 발표할 소설에 대해 귀띔했다.

“역사소설을 많이 쓴다고 말하는데, 역사적 사건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나 집착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역사 중에서 한 장면을 골라서 그 위에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죠. 그것 또한 문체처럼 전술적인 선택입니다. 이제는 (역사 소설을) 그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살아온 60년, 한국현대사 쪽으로 무대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