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콘 군상'으로 풀어낸 예술의 의미고대 로마시대부터 21세기까지 예술사회사의 과감한 퍼즐 맞추기

■이순예 지음 / 인물과 사상사 펴냄 / 25,000원

바티칸 박물관 원통형의 벨베데레 정원에 자리한 <라오콘 군상>. 트로이 전쟁에서 신들의 뜻을 거역한 죄로 거대한 뱀에 휘말려 고통 당하는 트로이의 제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깎아낸 대리석 조각상이다. 혹자는 내부로 들어오는 자연광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조각의 형상을 보라고 권유하지만 실상 그런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관람객들(대부분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로 붐비는 그곳에선 먼발치에서 사진 한 장씩 찍고 지나는 것이 감상 아닌 감상의 전부.

<라오콘 군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1506년 발굴 당시 미켈란젤로마저 감탄했던 정교한 조각상에 대한 찬탄일까. 시대가 얹어놓은 조각상에 대한 진지한 해석인가. 단지 소비될 뿐인 자본주의 관광 상품일 뿐인가.

<예술, 서구를 만들다>은 <라오콘 군상>을 서구사회에 정립된 예술의 가치를 훑어내는 단초로 삼아 현대사회에서의 예술의 의미를 찾아 종횡무진 한다. 고통의 수렁을 벗어나려는 큰 아들의 몸부림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진보를 뜻함과 동시에 유토피아를 꿈꾸던 시민사회의 부르주아에게 이상적인 인식의 제반을 마련해주었다. 저자는 이 안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뒤를 돌아봐야 하는 숙명'을 가진 근대인의 이중적인 의식을 해독해내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21세기를 관통하는 '예술의 힘'이자 그 힘으로 인해 권력에 밀착해온 대표적인 산물로서 <라오콘 군상>을 지목하고 있기도 하다.

<라오콘 군상>에서 풀어낸 예술의 존재 가치는 인간이 지닌 타고난 미적 능력이 통합의 길임을 강조한 칸트, 분열된 독일 사회 통합을 위해 예술을 끄집어냈던 괴테와 실러, 자연과 예술의 일치를 추구했던 이사도라 덩컨 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고대 원시 벽화부터 다 빈치, 고흐, 마네, 드가, 로댕, 뒤샹, 피카소, 샤갈에 이르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깊고도 넓은 예술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미학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이는 예술사회사의 과감한 퍼즐 맞추기 같다. 퍼즐은 18세기 칸트에서부터 20세기 아도르노에 이르는 독일 철학적 미학에 천착해온 저자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배치되었다.

결국 방대한 예술사를 좇고 거슬러 가며 저자가 찾고자 했던 것은, 자본주의에 포박당해 소외되고 두절된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예술의 의미이다. 현대의 예술은 무용함을 드러냄으로써 독보적인 유용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품고 있는 예술이 가진 힘은 여전히 효용의 가치가 있음을 그는 말한다. 아니 지금 그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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