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 장호연 옮김 / 19000원 / 마티 펴냄100년의 클래식 음반史훑어가며 명곡 100장과 최악의 음반 20장 소개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이 일단 손을 뻗게 하지만 이 책은 클래식 전반이 아닌 클래식 음반산업을 다루고 있다. 지난해 출판된 '굿바이 클래식'(조우석 지음)이 높기 만한 클래식의 아성을 깨뜨리기 위한 강펀치를 이미 날린 상태. 얼얼함이 채 풀리기도 전에 또 한번의 강력한 타격이 가해진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인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을 클래식 음반산업에 대한 '부고'라고 칭하며 100년 역사의 클래식 음반史를 훑어낸다. 그 과정은 거침없고 동시에 무척이나 흥미롭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칭송받는 빌헬름 캠프는 앨범과 공연에 대한 평이 달랐던 연주자였다. 음반에서 결점 하나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연주는 잔뜩 기대를 하고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빌헬름 캠프는 음반의 '영속성'의 장점을 꿰뚫어 본 연주자 중 한 명이다. 반면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앨범을 세계 최초로 남긴,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은 청중과의 교감을 우선시 했다고 전해진다.

EMI의 철수, 그라모폰의 휴간, 더욱이 밀어내기 식의 전집 앨범의 염가 판매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클래식 음반계의 사정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속사정은 그 곁을 오랜 시간동안 지켜본 이만이 알 수 있는 것. 캠프의 일화를 시작으로, 그 내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시작된다.

각 레이블의 특징, 레이블마다의 클래식 간판스타 등장,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이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유, 1970년대 겪었던 클래식의 위기, 침체에서 건져낸 CD의 등장, 이 때 부터 시작된 카라얀의 독주까지 클래식 음반 통사가 숨 가쁘게 전개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 같은 위기가 클래식 음반업계가 자처한 일이라고 진단한다. 대자본의 투입으로 인한 물량 경쟁은 레이블의 합병으로 이어졌다. 그 후, 군소 레이블이 각자의 색깔을 잃으며 다양성을 상실했고 결국 음반업계 전체가 나락으로 빠졌다는 설명이다. 반복 재생을 통해 아티스트의 역량을 비교하며 경쟁과 경제의 논리를 들여놓는, 음반재생의 눈치 채기 어려운 부분까지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음악의 역사를 바꾼 100장의 명반과 최악의 음반 20장을 소개한 2부 역시 재미있게 읽힌다. 클래식의 권좌가 너무 높았던 듯, 그 죽음의 부고조차도 호들갑스러운 게 아닐까 생각할 즈음 저자는 말한다.

"바야흐로 해석보다 모방이 더 중요한 시대다. 역으로 말하면, 음반은 표준에서 벗어난 일탈이나 서투른 기교를 용납하지 않는 비판적이고 까다로운 청중을 만들어냈다. 21세기의 독주자가 아르투르 슈나벨 같은 미스터치를 범한다면 아마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고.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