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꽃 우리나무]

봄 봄 보래를 부른지가 오래 되었지만 이젠 정말 봄 앞에 다가섰다. 뒤늦게 눈발이 날리기도 했지만 그 무엇으로든 봄의 기운을 거스를 수 있으랴.

가장 부드러우면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봄기운 인데 말이다. 그러나 보통은 봄소식이 숲 속에 꽃소식까지 이어지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싶었었고, 엊그제 남쪽에 다녀오니 길가에 매화꽃이 한창인지라 이제 슬슬 숲 속에 스스로 피어나는 진짜 봄꽃소식을 챙겨봐야 했는데 아뿔싸 이미 선수를 놓쳐버린 것이 있다.

바로 변산바람꽃이다. 이리저리 알고 보니 이미 변산바람꽃은 첫 소식을 알린지 두주가 넘어 버렸다. 하지만 중부지방까지 올라오면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니 이 부지런하고도 가녀린 꽃을 보고 싶다면 정말 빨리 서둘러야 한다.

변산바람꽃이라고 하니 조금은 낯선 이들이 많을 터이다. 대부분의 봄꽃은 매화에서 시작하여 개나리, 진달래를 생각하며, 좀 더 우리 꽃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복수초와 노루귀을 떠올릴 것이며 보다 많은 숲 식물과 인연이 있다면 혹은 잔설을 곁에 두고 피어나는 얼레지나 앉은부채 정도이겠으나 이제 우리꽃 매니아들의 첫 봄꽃 나들이는 모두 변산바람꽃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여리지만 강하고, 순박하지만 개성 있으며 무엇보다도 곱고 아름다운 이 우리 풀에 말이다.

변산바람꽃이 익숙하지 않은 식물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식물이 우리나라에 아니 지구상에 자라고 있음이 확인되어 알려진 것이 1993년으로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고등한 식물 가운데 전혀 새로운 신종이 발견되기는 쉽지 않은데 바로 이 풀이 그러하다.

변산바람꽃이란 이름은 처음 발견된 지역이 전북변산이며 바람꽃류와 비슷한 식물집안이어서 그리 이름이 붙었다. 학명은 에란티스 변산엔시스(Eranthis byunsanensis)로 속명은 봄이란 뜻의 "er"과 꽃이란 뜻의 "anthos"의 합성어이니 이로써 봄의 꽃을 대표한다 할만하다.

꽃은 말한 것처럼 이른 봄에 핀다. 남쪽에서는 이미 2월중순이면 꽃소식이 들려오고 수리산이나 설악산과 같은 중부지방에선 2월말이나 3월초에도 볼 수 있다.

쉽게 만나지는 그런 식물운 아니지만 정말 가장 먼저 봄꽃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최근에는 풍도에 많은 군락이 확인되었는데 때맞추어 이 곳에 가면 자칫 발자국을 잘못 디디면 이 꽃을 밟을 까봐 염려될 정도이다.

숲에 적절히 햇살이 스며드는 다소 습한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여러해살이 풀이지만 아주 가늘고 작다. 한 뼘은커녕, 손가락 하나 높이정도 될까. 야리야리 줄기 끝에 하나씩 흰 꽃이 달린다. 때론 연한 분홍빛이 도는 꽃봉오리에서 흰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꽃이 활짝 피면 꽃 속이 모두 들어 나는데 수술이 많다. 꽃들 그렇게 다가가 들여다 보다보면 아른 꽃에서 볼 수 없는 끝에 초록빛이 도는 깔때기 모양의 기관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바로 꽃잎이란다. 독특하게도 말이다. 그럼 꽃잎인줄 알았던 5장의 흰색 잎은? 꽃받침이다. 새로새록 신기하고 어여쁜 우리풀이다.

사실, 이 변산바람꽃을 알고 있은지는 참 오래되었다, 신종으로 발견되어 발표되기 훨씬 이전부터이다. 너도바람꽃과 비슷한데 좀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만 하는 사이에 몇 년이 흘러버렸고 부지런한 학자에 의해 정리되어 이름이 붙어 세상에 나왔다. 마음만 있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교훈을 내게 준 풀이기도 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