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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 미술관 학예실장은 정무직?
[이슈&컬처] 대부분 계약직… 관장·행정공무원 '디렉터 십'에 흔들리는 '큐레이터 십'




김청환기자 chk@hk.co.kr




김종주(45)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지난 2월 16일 전북도청으로부터 해임을 통보받았다. 전북도청은 '명령 불복종', '직무태만', '공무원 품위훼손'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이에 불복하고 있다. 미술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전 실장은 2년씩 2번을 연임한 관장이 최대 5년까지 돼있는 관장직에 무리하게 3선 연임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반대여론이 있었지만 본인은 중립을 취했는데 반대자로 몰려 쫓겨났다고 주장한다.

김 전 실장은 "관장의 3선 연임을 반대하는 지역 작가들의 서명서류를 접수해 갖고 있었던 것, 고사 끝에 관장 연임에 관한 공청회에 단순 참석한 것 등을 곡해했다"며 "작가들과 관장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했는데 반대자로 몰려 괘씸죄를 받고 해임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면 최효준(57) 전북도립미술관 관장은 도청의 감사를 거쳐 해임됐기 때문에 관장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최 관장은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실장의 해임이 유감이지만 이번 결정은 도청의 몇 달간에 걸친 감사 끝에 내려진 결정"이라며 "지역 연고가 없는 계약직 관장으로서 일반직 공무원이었던 학예실장이나 텃세가 심한 지역 작가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고 해명했다.

김 전 실장 해임 사태 진위와 적법성 여부는 행정소송 등의 법적 판단을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학예실장의 불안정한 신분과 역할은 국공립미술관 일반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학예실장의 계약직 신분은 학예실이 학자적 양심으로 전시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것을 가로막고 정치성향에 휘둘리게 하는 원인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문화 저력의 토대를 흔드는 가시적이지 않지만 근본적인 문화정책상 오류로 지적되고 있다.

계약직 학예실장 1년 안에 성과 내라(?)

대부분 전문계약직으로 돼있는 국공립 미술관 학예실장의 신분은 미술관의 공공성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종주 전 실장은 2004년 이전에 일반직 공무원으로 학예실에 임용된 예외적인 경우다.

신분보장이 없는 학예실장이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연구와 기획활동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공립미술관은 예산의 대부분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지원받는다.

지난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이 학예사를 전문계약직으로 뽑기 시작한 이후 대부분의 국공립미술관은 학예실장과 학예사를 1년 안팎의 단기 계약직으로 임용하고 있다.

채용기간 연장에 급급한 학예실장은 지자체장이나 정부의 정치적 스케줄에 맞춰 기획전을 펼치려는 일부 관장에 맞서 자신의 소신대로 연구와 기획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장동광 전 서울대 미술관 학예실장은 지난 2006년 1년의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임된 바 있다. 관장이 바뀌면서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장 전 실장을 포함한 학예실 직원 3명을 해임한 것이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역시 지난 2003년 관장이 바뀌면서 10년 동안 일한 미술관에서 밀려났다. 정 전 실장은 2005년 덕수궁미술관장으로 전보발령됐다가 2006년 조사연구팀장 직무대행으로 강등발령된 후 물러났다. 민예총 출신의 김윤수 전 관장에 비해 정 전 실장은 보수성향으로 분류됐다.

박천남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지난 2004년 관장이 바뀐 후 계약기간 1년의 종료 후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박 전 실장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로댕미술관 등에서 학예과장을 지낸 실력파다. 부산시립미술관은 해임 이유를 "더 나은 실장을 뽑기 위해서"라고만 밝혔다.

'디렉터 십'에 묻히는 '큐레이터 십'

우리 국공립미술관 학예실의 '큐레이터 십(curator-ship)'은 관장이나 행정 공무원의 '디렉터 십(director-ship)'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학예실장을 비롯한 학예사들은 '병원으로 치자면 80%의 원무과 직원이 20%의 의료진을 지배하는 꼴'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학예실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학예실장을 비롯한 학예사에게 최소한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미술계 여론이 높다. 미술관의 자기정체성을 마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물갈이 되는 학예실장 체제에서 미술관만의 독특한 정신이나 철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선진국의 미술관은 오랜 시간의 연구와 심사숙고를 통해서 문화와 당대시민을 고려한 콘텐츠를 만들고 장기간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선진국 역시 큐레이터의 급여가 높지는 않지만 전문가에 대한 존중의 태도와 임기보장에 대한 사회적 관행이 정착돼있다. 유럽, 일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50~60대의 큐레이터를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세계적 미술관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서는 하나의 전시를 위해 학예실장에 해당하는 수석 큐레이터와 큐레이터들이 5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전시회를 기획하고 실행하기도 한다.

관장의 역할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 관장의 '디렉터 십'은 학예실이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전문직과 일반 행정직의 업무성격상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 대표자로서 대외적 역할을 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국공립 미술관장들은 자신이 전시 기획을 주도하거나 학예실장을 주종관계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울시립미술관은 2003년 이원일 전 학예실장 해임 이후 5년째 학예실장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두고 있다. 전국 국공립 미술관 8곳 중 학예실장이 있는 곳은 광주, 대전시립 미술관 두 곳뿐이다.

심상용 동덕여대 큐레이터 학과 교수는 "전시기획, 교육프로그램, 연구실행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게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이라며 "인문학적, 역사적, 시대적 지식을 바탕으로 미술품을 연구하고 수집해 나름의 해석을 바탕으로 전시함으로써 시대정신을 후대에 전달하는 학예사가 학자적 양심을 갖고 연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와 제반여건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이어 "나름의 효율성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계약제도 자체가 패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예실장에게 최소한 5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오랜 연구와 방대한 자료수집 끝에 나온 미술 전시가 표현상으로는 피상적인 전시와 차이가 없겠지만 장기적 안목의 미술관 전시와 운영은 문화적 저력으로 사회에 흡수되기 마련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산하의 세계박물관협회는 '뮤지엄(Museum)'을 "항구적이자 영속적인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술관(Art of Museum)과 박물관(History of Museum)은 모두 '뮤지엄(Muse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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