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삶에 흘리다' 저자 손철주 씨한시와 그림 주제 누구나 공감하는 '트로트 느낌의 에세이' 펴내

그 사람을 알려거든 친구를 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빌려 오늘의 인물을 정탐해본다.

“내가 선배에게 늘 감탄하는 것은 그가 타고난 완상가라는 사실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주헌은 “세상이 팽팽 돌아도 그걸 ‘슬로 모션’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소설가 김훈이 내놓은 찬사는 또 어떠한가. 김훈이 본 그는 “경건(敬虔)까지는 넘보지 못할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의 마음이 단정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란다.

이들의 말에 기대 그를 짐작해 보건데, 그는 ‘흘러간 로맨티스트’임이 분명하다. 꽃 떨어지고, 술 취하는 날이면 시(詩)를 읊어댄다는 소문도 들린다. 인사동 술집 ‘평화만들기’에 가면 흥에 겨워 ‘한시 특강’을 펼쳤던 그를 볼 수 있었다.

고전에서 포착한 일상의 단면

일간지 미술기자를 거쳐 미술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출판사 학고재의 손철주 주간이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와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등 스테디셀러를 낸 그는 그림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해 말해왔다. 최근 한시와 그림을 주제로 에세이집 ‘꽃 피는 삶에 홀리다’를 출간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글에 ‘늙은이 정서’가 상당히 많이 나와 있잖아요. 그래서 젊은 독자들이 ‘문장이 좋았다’라고 말하면 난 오히려 의아했어요.”

신간을 ‘트로트 느낌의 에세이’라고 소개한 그는 내심 젊은 독자의 반응이 궁금한 모양이다. 한시와 옛 그림, 일상의 단면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그의 문장은 우리 고전의 멋을 듬뿍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고전을 밑천삼아 펼친 저자의 일상사다.

저자는 이 책을 ‘18세기 조선 소품문’에 비유했는데, 편안하고 재치 넘치는 문장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은꼴로 보였다. 감상평을 기다리는 그에게 ‘선뜻 고전에 도전하지 못하는 젊은 독자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해주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 책에서는 까마득한 깨달음을 담은 시보다 남녀사이의 통속적인 교감을 바탕으로 썼던 옛 시를 인용했어요. 제가 술자리에서 즐겨 읊는 시이기도 하고요. 약간 트로트적인 음색이 있는 글을 고른 겁니다. 트로트는 누구나 공감하는 정서잖아요?”

두보와 부용, 서정주의 시에서 그는 자신의 일상을 포착해 낸다. 두보의 시에서 봄날의 흥취를 찾고, 서정주의 시에서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꺼내 놓는다.

수백 년 전 선인의 삶이 우리와 멀지 않은 것임을, 저자는 한 가락의 시로 보여준다.

‘혜원(신윤복)은 춘정을 읽는데 상수였다. 단서는 그가 적은 그림 속 제시에서 보인다. ‘빽빽한 잎에 짙은 초록 쌓여가니/ 가지마다 붉은 꽃 떨어뜨리네’ 청춘의 엽록소는 봄날에 절정을 이룬다. 젊은 사내의 초록 빛 춘정은 이기적이다. 그 앞에 붉은 여심은 버티지 못하고 추락한다.’(‘꽃피는 삶에 홀리다’ 중에서)

그림에 말을 걸다

일상을 포착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그림이다. 김홍도, 장승업 등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과 로자 보뇌르,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등 서양화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어 그림 이야기를 펼친다.

‘여기서 잠깐 다른 난 그림 하나를 보고 넘어가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그린 난초다. 대원군은 구한말 난초 그림의 일인자로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 이후로는 대원군의 난을 최고로 친다. 왼쪽으로 뻗어나간 하나의 난 잎을 보라. 잎에 부드러움과 굳셈이 함께 들어있다. 외유내강이 이런 것이다.’(‘꽃피는 삶에 홀리다’ 중에서)

그의 그림 해설을 읽고 있노라면,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자의 찰진 입담은 조선백자와 사군자, 산수화까지 시대와 공간을 훌쩍 넘어 그림을 일상의 한 장면으로 인식하게 한다.

“미술이 한 인간, 작가의 생애에서 나온 것이지 않습니까? 작가의 삶을 간과하고 절대 순수로서 미술 작품을 볼 수 있을까? 이게 제 입장입니다. 어떤 예술장르라도 예술을 낳은 자의 삶에서 유리된 것은 없는 것이죠.”

그는 종종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그림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발품 팔며 보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가 그림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학창시절부터. 용돈이 생길 때마다 헌 책방에서 흑백 미술 도록을 사서 열심히 그림을 보았단다. 중고등학생 시절 고수 문청(文靑)들의 틈에서, 그는 튀기 위해 고흐와 고갱, 클림트의 ‘스토리’를 친구들에게 말해주곤 했다. 미술 담당 기자 시절과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지금까지 그는 수십 년을 미술과 함께 한 셈이다.

“전 추상화에서도 이야기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작품을 생산해 내는 사람의 삶에서 어떤 걸 잡는 거죠. 모든 선, 색, 형태를 깊이 들여다보면 작품이 스스로 보는 자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전 그 소식을 독자한테 전하려고 하는 거죠.”

인터뷰 중간 한시를 읊으며 감회에 젖던 그는 지갑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깨알같이 적은 한시 메모다. 새 작품을 접하면 적어두고 자주 꺼내 읽으면서 외우는 게 습관이 됐단다. 한시를 좋아해서 저절로 외우게 된다는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두보의 시를 들려주었다.

‘한 점 꽃잎이 흩날려도 봄은 덜어지는데/ 저리 바람에 만점 흩날리는 이내 마음 시름겹도다/ 또한 눈 앞에 모든 꽃잎 다 스러지려하니/ 한잔 술이 해롭다고 어이 마다하리요(一片花飛減却春 風飄萬點正愁人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脣)’

“짧아서 아찔한 그 봄날의 황홀경, 이런 것을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