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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 상태로 존재하는 조각상에 대한 감상
[지식인의 서고]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편혜영 소설가



비전문가이므로, 범박하게 말하는 게 용서된다는 것을 전제로, 나는 회화나 조각은 일종의 정물(靜物)이라고 생각한다. 정지된 사물에 관한 그림이나 조각이라는 뜻이 아니다. 정적인 상태로 놓여 있는 사물에 관한 그림이나 조각이라는 말이다.

작가란 바로 역동적인 대상 속에 담긴 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이다. 움직임이 없는 상태, 말하자면 고요의 상태에 놓인 사물의, 인간의, 자연의 한 일면과 만나 자신의 마음에 인 고요를 화폭에 담고 조각으로 남기는 사람이다.

장 주네는 ‘도둑 일기’라는 소설이나 ‘하녀들’이라는 극작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작가이다. 그가 쓴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라는 책은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 방문하면서 나눈 둘 사이의 교감, 자코메티의 조각상에

대한 감상을 다룬 책이다. 피카소가 “내가 읽은 가장 훌륭한 예술론”이라고 극찬했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론이라는 말의 무게에 짓눌릴 필요는 없다. 기실 이 책은 자코메티의 조각상에 대한 해설서도 아니고 이론을 갖춘 미학서도 아니다.

예술에 대한 지나친 찬사와 장식은 때로 그 때문에 대상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데, 장 주네는 자코메티의 외롭고 고독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조각상들에게 무턱대고 찬사를 건네지거나 섣불리 의미를 해석하는 대신 자신이 이해하는 대로 조각상을 바라보고, 의문이 생기면 묻는다.

질문과 대답은 격의 없고 솔직하나 그렇기 때문에 뜻 깊고 철학적이다. 장 주네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자코메티는 장 주네에게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조각상을 바라보고 조각상에 대해 생각하고 조각에 대해 생각하고 종내에는 예술에 대해, 그리고 예술이 필요한 삶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자코메티의 조각에 담긴 고독의 의미를 알 수 없고 존재의 본질을 알 수도 없다. 다 읽고 나면 그런 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은 표현된 진술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섣불리 표현된 고독은 오히려 고독을 은폐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당장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거면 됐다. 깡마른 채로, 고요의 상태로, 그러니까 범박하게 정물의 상태로 존재하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보면서, 장 주네가 그랬던 것처럼 자코메티가 포착한 대상의 고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기 내면에 이는 고독의 순간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 자신도 정물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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