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뒷마당]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4명의 문인 컨테이너선 동승 두바이로… 21일간 바다를 담은 에세이

왜 대륙으로 갈 생각만 하는가? 육지보다 세 배나 넓은 바다가 있다. 망망대해를 체험하고자 애면글면한 작가가 있었다. 최근에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소설집을 낸 한창훈 작가는 20대적에 원양어선을 타려고 승선교육까지 받았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소설가가 된 이후 그는 항해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운회사에 편지도 보내고, 해양수산부에 기획안도 내고,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다. 대개 농담으로 취급 받았지만, 소문은 났다.

한 인터넷신문 문학기자는 무슨 취재일로 H상선 오 상무를 만났다. 기자는 “배를 타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있다”라고 진지한 농담을 했고, 오 상무는 긍정적인 호기심을 보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항해를 갈구하는 작가들과 해운회사의 최고 윗선이 소통할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H상선 사람들은 작가들과의 노도와 같은 하룻밤 술자리를 보내고, 작가들을 배에 태워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위로는 휴전선이 가로막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인 좁은 땅덩이를 벗어나 드넓은 바다를 호흡함으로써 참여 작가들이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들의 바람에 공감했다.

“작가들 항해 체험이 선원들에게도 문인들과 교류하고 고민을 나눌 좋은 기회가 되”면서 “항해 체험 결과 작가들이 훌륭한 작품과 문화적 결실을 내서 일반인들에게도 대양의 현실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2005년 4월, ‘1차 대양을 향하는 작가들의 항해’가 이루어졌다. ‘H상선도 발상 전환을 해주었다. 홍보 하면 으레 기자를 태우는 것이 굳어진 관행이었지만 이번엔 작가 네 명을 기꺼이 승선시켜주었다. 홍보실 오 상무님의 배려와 노 사장님의 전폭적인 허락 덕분에 우리는 H상선 컨테이너선 하이웨이호를 타고 두바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대만의 지룽, 홍콩, 중국의 얀티얀, 싱가포르, 말리에시아의 포트클랑, 그리고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항해 3만 리, 총 스무하루가 걸렸다. 몇 날 며칠,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대양을 짐 가득 싣고 묵묵히 움직이는 수많은 국적의 배들. 우리는 우리바다 교역 물동량 99.7퍼센트가, 세계 물동량의 4분의 3이 바다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 항해의 기록은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라는 책으로 출간된 바 있는데, 책의 제목에는 사연이 있다. 스무 명의 작가들이 거문도를 관광한 적이 있다. 거문도 관광 관계자와 여행사들이 거문도를 홍보하기 위해 주선한 행사였다. 그때 한 시인은 배에 타기 전부터 술에 취했고, 거문도에 들어가서도 숙박업소에서 술만 마셨던 터라 바다를 잠시도 맨눈으로 보지 못했다.

나중에 그 시인이, 거문도에서 무얼 보았느냐는 힐난 섞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 어디서 보았을까? 거문도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후 며칠 뒤 텔레비전에서 거문도편을 했는데 거기서 바다를 보았다는 것이다.

4차 항해에 나선 작가들(첫째줄 왼쪽 두번째부터 소설가 이성아, 소설가 권지예, 시인 유용주, 소설가 김종광)

아무튼 그 책은 작가들이 스물 하루 동안 대면한 바다를 담아놓은 소중한 에세이다. 거대한 배를 고작 이십여 명이 몰고 간다. 그 망망대해 사나이들의 짧지만 깊은 바다 인생을 담은 솔직 담백한 인터뷰도 실려 있다. 그 책에 없는 바를 하나 밝혀놓자면, 박남준 유용주 한창훈 안상학, 이 네 명의 사나이는 그 배에서 공히 10킬로 이상씩 살이 쪘고, 그 살을 빼는데 거의 반년이 걸렸다.

‘전화 핸드폰도 인터넷 메일도 없이 TV 신문도 시간을 다투는 책무도 모임도 회의도 없이 다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부지런한 침묵소리뿐, 들리는 건 망망대해 홀로 가는 배의 심장소리와 바람소리뿐’인 곳에서 규칙적인 식사를 하면 몸은 무진장 부풀어 오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2006년 3월의 2차 항해는 박남준 시인과 김이정 이경혜 이성아 소설가가 홍콩~로테르담 항로에 동승했으나 항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중도에서 돌아오는 아쉬움으로 끝났다. 2007년 3월의 항해는 소설가 한창훈 오수연, 시인 이원규 김해자 등이 콜롬보 호를 타고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항해했다. 김해자 시인은 시집 ‘축제’의 ‘바다가 다 받아주리’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바다는 한 몸이었네 핏대 세우는 논쟁도 없이 쉬지 않고 운동만 잘하였네 승리도 패배도 없이 순연히, 한몸이되 저마다 다르게 율동만 잘했네 평화로이 숨 쉬었네 니편 내편도 없이 당파도 파벌도 없이 한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평등의 얼굴이었네 깃발 구호도 없이 일제히 일어서고 일제히 순해져 쉬는 단결의 표정이었네 大同의 얼굴이었네’

2008년 12월의 4차 항해는 소설가 권지예 이성아 김종광, 시인 유용주가 두바이까지 항해했다. 그 이전의 항해는 컨테이너선이어서 몇 번은 각 대륙의 주요 항구에 들렀다. 그러나 마지막 항해는 유조선이라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유조선에 탑승, 18일간, 아! 어! 오! 우! 라는 네 음절의 감탄사로 정리할 수 있는 12월의 대양 위에서, 오전에는 바닷물과 구름과 수평선을 면벽수련 했고, 오후에는 배에서 가능한 거의 유일한 단체운동인 탁구를 막장의 극한까지 연마했으며, 밤에는 달님과 별님과 노래를 벗하여 음주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된 항해는 한 번 더 남아 있다. ‘대양을 향하는 작가들’의 대표인 한창훈은 작가들의 배 탈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분단의 제약을 넘어 북방의 대륙적 상상력을 회복하자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졌지만, 그와 동시에 한반도 남쪽으로 시선을 넓히는 대양적 상상력 역시 필요하다. 대륙횡단 열차를 타는 만큼 원양어선이나 상선을 타는 문인들이 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김종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