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와 토지/김윤식 지음/ 강 펴냄/ 2만 원'악마적 글쓰기 벗어나기' '산천사상' 등 키워드 분석 흥미진진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21세기에도 남을 한국소설에 관한 설문이 있었다. 당시 시인(29명), 소설가(29명), 평론가(42명)들은 아래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1위 ‘토지’ 2위 ‘광장’ 3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4위 ‘삼대’ 5위 ‘임꺽정’. (한국일보 1999년 1월 5일자)

이에 대해 평론가 김윤식은 “과연 이들이 21세기에도 남을 한국소설의 고전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당시의 문단적 감각이 ‘토지’를 첫 번째 자리에 놓았다는 사실”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박경리의 문학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가 타계한 지 1년(5월 5일)을 맞아 그의 문학사적 의미를 되짚는 기획과 문학 행사가 주를 잇는다. ‘토지’라는 산맥을 지나지 않고, 한국 문학의 한 축인 대하소설을 논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윤식 평론가의 신간 ‘박경리와 토지’는 이 연장선에 있다. 그는 ‘토지’를 통해 작가 박경리와 한국소설의 전통을 되짚는다. ‘악마적 글쓰기에서 벗어나기’, ‘산천으로서의 토지’, ‘뻐꾸기와 능소화’등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분석한 소설 ‘토지’는 자못 흥미롭다.

초기작에서 ‘토지’에 이르는 박경리의 문학도정은 ‘악마적 글쓰기로부터의 벗어남’이다. 저자는 아들의 죽음, 생모와의 갈등을 다룬 박경리의 ‘불신시대’, ‘반딧불’ 등 1950년대 작품을 사소설적 경향이 강한 ‘악마적 글쓰기’라고 말한다. 그는 박경리가 이후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을 지나 ‘토지’에 이르러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결론 내린다.

두 번째 ‘산천사상’에서 저자는 소설 ‘토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뻐꾸기 울음’ 과 ‘능소화’에 주목한다. 이는 ‘토지’의 참 주제인 생명사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장치다. 이와 함께 ‘토지’를 비롯한 ‘지리산’이 무대인 대하소설 계보를 정리했다.

박경리의 빈소 풍경을 보고 적은 회환도 담겨있다.

‘토지가 부드럽고 따뜻하기 위해서 목숨 전부를 걸어야 가능했을 터…보시라, 얼룩진 최참판 댁의 운명적 어둠을 밀어내고 거기에다 천박하지만 화려한 빛깔을 부여한 문학적 솜씨를’(341쪽)

긴 여행의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토지’는 그러니까 영락없는 영락없이 육안으로 바라보는 ‘혼불’과 남부군의 집단지인 ‘지리산’의 한가운데 위치한 형국”이란 것이다.

‘이 울림의 미학으로 잴 때, (A)계(해방 후 단편소설)은 어떠하며 또 (B)계(해방 후 장편소설)은 어떠할까. (A)계에 있어서의 우리 소설, (B)계에 있어서의 우리소설, (C)계(대하소설)로서 우리 소설이 각각 있고, 또 이들이 어울려 있다고 할 때 비로소 우리 소설은 한층 투명해 질 수 있을 것이다.’(9쪽, ‘토지에서 바라본 우리 소설의 세 가지 범주’ 중에서)

근현대문학사를 함께 겪어온 두 대가의 만남은 흥미 이상이다. 종적, 횡적 분석을 통한 저자의 해설에는 문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신간안내

클래식 피크닉
박정준 지음/ 레몬 펴냄/ 1만 3800원


문화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편집장 출신의 음악평론가 박정준이 쓴 클래식 입문서. 저자는 ‘지휘자의 카리스마’, ‘오케스트라 줄을 서시오’, ‘신경쇠약 직전의 피아니스트’, ‘클래식과 친해지는 몇 가지 방법’, ‘베토벤 콤플렉스’ 등 다양한 소재로 클래식음악을 설명한다. 또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주자 등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클래식의 재미를 붙여준다.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1, 2
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이순호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 각 2만 5000원


‘베네치아의 역사’, ‘비잔티움’ 등으로 알려진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대표작. 기원전 3000년경부터 제 1차 세계대전까지 지중해 역사적 사실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저자는 전쟁, 외교, 음모와 상업, 예술 등 5000년 지중해 역사를 두 권의 서사시로 소개한다.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하영선 외 지음/ 창비 펴냄/ 2만 8000원


이 책은 근대 한국이 19세기 근대유럽의 기본 개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밝힌 책이다. 사회과학 개념을 둘러싼 세계적 패권경쟁을 역사적으로 탐구한다. 저자는 권력, 주권, 평화, 개인과 같은 근대서구 개념들이 19세기 동아시아에 전파된 과정, 동아시아의 변형과 수용 과정을 당시의 담론 싸움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