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침묵의 뿌리'

31년 전, 조세희는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책 한 권을 써 내려갔다. 그것은 가슴 졸이는 질문이었다. 외면하고 싶지만, 봐야만 하는 거울이었다. 우리에게 양심의 찌꺼기라도 남아있다면, 눈앞에 펼쳐진 이 살벌한 비인간의 풍경에 답해야 한다는 호소와 질책이었다.

한국문학의 손꼽히는 문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의 작가적 심미안이나, 유려한 글 솜씨, 풍부한 상상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세희는 다만 손을 빌려주었을 뿐이다. 그의 손을 빌려, 짓밟히고 아픈 삶을 써 내려간 이는 난장이 자신이었다. 수챗구멍에 내버려진 삶도, 죽어 사라지기 전엔 삶이다!

그로부터 7년 뒤, 조세희는 ‘침묵의 뿌리’라는 사진산문집을 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에 따르면 “이 책은 죄에서 시작해 죄의 문제로 끝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죄가 한 개인의 사적인 죄가 아니라, 사회적 불의를 책임지지 않는 우리 공동의 죄이며, 죄에 대한 분노와 그것의 무책임이 빚어낼 사태를 경고”하고 있었다.

김병익은 “밤늦게 펴들어 보기 시작한 이 책을 한꺼번에 보아 내려가며 마지막 장을 덮던 어느 밤의 전율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눈물로 얼룩진 이 책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해 아무 말 못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들에게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묵뿐인 것일까.

험한 시절 사북의 아이들이 써 내려간 짧은 일기는 너무 맑아 나를 부끄럽게 했고, 너무 아파 오래도록 가슴에 맴돌았다. 책 속의 사진들은 종이로 만든 거울이었다. 하나같이 못났건만, 하나같이 삶을 짊어져야만 하는 나와 너. 우리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조세희는 이렇게 썼다.

“지구에서는 못 일어날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꾸지 않았다. 혁명이나 개혁을 호소한 적도 없다. 그가 붙들고 싶은 것은 브레이크였다. 더 나빠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의 급브레이크. 두 책은 31년과 24년 전의 우리모습을 담은 삶의 풍경화다. 아니, 31년과 24년 전의 ‘흘러간’ 풍경화이고 싶다.

2009년, 1월의 찬바람을 맞으며 조세희는 용산에 섰다. 살벌한 비인간의 풍경과 ‘무책임이 빚어낸 사태’는 31년 전에도, 24년 전에도 종결된 적이 없었다. 난장이가 없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악한 착각이 아니던가. 난장이는 용산에 있었다. 그날 4철거구역 남일당 빌딩 위 망루에서 무언가 외치다가 화염에 휩싸였던 이가 바로 그 난장이였다.

살려고 올라간 난장이들은 까맣게 타죽어, 국과수에서 갈기갈기 찢긴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니, 품에 안기지 못하고 아직도 냉동고에서 떨고 있다. 지구에서는 못 일어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날의 비참한 잿더미 앞에서 조세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분들을 죽인 건 우리 자신”이라고, “먼저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허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리의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노 작가가 왜 모르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 이 거대한 침묵은 권력자의 강요로만, 가진 자의 간계로만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난장이일 리 없다’는 착각의 담합,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외면의 담합이야말로 이 거대한 ‘침묵의 뿌리’임을 오늘의 용산은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정녕 죄에 관한 구제불능의 반복적 존재인 걸까.



노순택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