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시들/김지하 지음/ 이룸 펴냄/ 1만 원가족 이야기·촛불집회 단상 등 연작 형식 100여 편의 작품 모아

“내가 제일 겁내는 게 우리 두 아들인데, 아들이 아버지 시는 너무 잘나서 어렵다고 말했어요. ‘오적’ 이후에 제 시가 어려워졌지요. 어떻게 재미난 시를 쓰냐, 노력을 해야 했죠.”

김지하 시인의 새 시집 <못난 시들>의 이름은 이렇게 붙여졌다.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혜안을 선보였던 시인은 신간에서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성찰을 보여준다.

‘인연일까?/두 어머니 떠나보내는 집안의 긴긴 촛불./그리고 밖에서는 저 어마어마한 전 문명사/전환의 기나긴 촛불./거기에 촛불세대인 내 두 아들의 바람. “아버지/좀 쉽고 재미있는 시 쓰세요!”’ (서문, ‘어수룩하게 살고 못난 시 쓰고’ 중에서)

시의 격조와 미학과 은유를 던져버린 노 시인은 이제 사회와 삶을 관조하듯 노래한다. 이를테면 자주 못 보는 아내, 유학간 아들, 고양이 땡이 등 가족 이야기와 촛불집회에 대한 단상이다. 그러니까, 연작 형식으로 발표된 백여 편의 시를 묶은 신간은 노 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드러난 삶의 기록인 셈이다.

‘촛불이후//난/새로 태어났다//쓰기 시작했고/끝없이/쓰고 또 썼다//출판이 어려울거라 짐작해/가까운 이들에겐/원고 복사판을/늘/열심히 보냈다//처음엔 무척/고마워하더니//조금 지나니/도리어/씹기 시작한다/어째그럴까?//아내까지도/나의 복사 행위를 우습다 한다//책으로 내면 될걸/ 조래방정 떤다고’(‘못난 시 921123’ 중에서)

‘나//원한이 많은 사람//세상에서 끝없이/매 맞고 쫓겨난 사람//이제/나이 칠십인데도//가없이 끊임없이/천대받는 사람//오늘 새벽 다섯시//일어나 앉아/홀로/숨죽여 호곡할 적에//우리집 고양이/땡이가 웬일로/허공을 향해 울부짖는다//땡이가/내 대신 울음 운다’(‘못난시 321’중에서)

압축과 수사를 걷어낸 시는 낯은 곳을 응시한다. 발간 후 김지하 시인은 “지난 해 촛불 시위는 피보호대상, 일반 서민이 시청광장에 나온 사건이다. 19세기 말 김일부가 말한 ‘못난이들이 임금이 되는 세상’이 드러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이 쏟아내는 ‘못난 시’들은 변하는 시대에 대한 그의 통찰인 셈이다.

‘내 삶의/ 짙은 그늘이/ 촛불로 인해/ 흰빛을 뿜는다//나는/내 두 아들에게 이제/구원받는다//내가/그 그늘로/놀라 병들게 한/두 아들에게 도리어/구원받는다//그들은/촛불세대//흰 그늘이/참으로 이제야/나의 미학이 된다’(‘못난시 19’ 중에서)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
이형구, 이기환 지음/ 성안당 펴냄/ 1만 7500원


중국 황화문명보다 더 일찍 태동한 발해연안문명. 발해문명을 이끈 것은 우리 민족의 원류인 동이(東夷)였다. 저자는 상, 고조선, 부여 등 곰을 섬기고 천자를 칭한 동이의 나라와 이들이 이뤄낸 문명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펼친다. 동이가 열렸던 위대한 문명길, 코리안 루트를 따라가는 고고학 여행서.

생긴 대로 살게 내버려둬
홍황 지음/ 문현선 옮김/ 이미지박스 펴냄/ 1만 2000원


저자 홍황은 중국의 민주인사 장스자오의 외손녀이자 작가 장한즈의 딸, 영화감독 천카이거의 전처 등 화려한 후광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이 책에서 목적을 위해 간과되어온 과정의 중요성을 말한다. 삶의 기쁨은 전부 지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이다. 중국 ‘홍색귀족’(중국의 신흥 귀족)의 남다른 시각과 거침없는 표현이 담긴 에세이.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민병일 지음/ 열림원 펴냄/ 2만 2000원


시인 민병일이 사진집을 펴냈다. 1998년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리를 기록한 작품집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평사리에는 예전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때문에 붙인 제목이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이다. 옛 평사리 모습을 담은 100여 점의 사진과 에세이가 엮였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시골 풍경을 담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