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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 문단이 움직였다
[문단 뒷마당]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분단 후 60년 만에 남북 문인 첫 집단 만남
5박 6일 방북기 쏟아내





김종광 소설가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지난 2005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북한 문인들이'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열었다.


흔히 ‘문인(文人)들의 사회-문단(文壇)’이라고 하지만, 문단의 실체적인 모습을 규정하기란 애매한 일이다. 사전에 의하면 ‘문인’은 ‘1-문필에 종사하는 사람. 2-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돼있으니, 문인의 숫자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통상, 문인은 ‘작가’의 다른 말처럼 쓰이는데, 공식적인 작가만도 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 많은 문인들을 두루 만족시키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문단이라는 말은 대중들 사이에서는 ‘저명한(속되게 표현하자면 스타급) 문학인들의 사회’로 인지되고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7월 20~25일의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는 ‘한국 문단이 움직였다’고 두루 인정받을 만한 일이었다.

이기형 고은 남정현 백낙청 신경림 송기숙 현기영 김원일 전상국 임헌영 신상웅 등의 원로작가, 한국 양대 산맥인 두 문학인 단체의 리더(민족작가회의 이사장 염무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신세훈), 황석영 이경자 이시영 김형수 강태형 방현석 김재용 정도상 김훈 신현수 이대환 조재도 이문재 김하기 이남희 공지영 신경숙 김인숙 정지아 은희경 성석제 안도현 도종환 등의 중진작가, 손세실리아 고명철 손홍규 신용목 등의 신진작가, 여기에다 연합신문을 비롯한 10대 일간지의 문학담당기자들! 기라성 같다는 표현이 전적으로 울리는 한국문단의 저명한 문인 총 98명이 무려 5박 6일을 함께 움직였다.

북한의 평양 백두산 묘향산을 오가며 치른 민족작가대회의 가장 단순한 목적은 남쪽의 작가들과 북쪽의 작가들이 만나서 소통하는 것이었다. 남쪽 문인들이 만난 북쪽 문단의 원로, 홍석중 오영재 남대현 박세옥 리호근 등은 남쪽에도 많은 독자들을 거느린 분들이다. 그러니 민족작가대회는 남쪽 문단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단 전체가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북 문인들이 집단적으로 만난 것 자체가 분단 이후 60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북쪽 작가들과 자주 소통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일정은 남쪽 문인들끼리의 관광, 그리고 숙소에서의 흥건한 술자리로 채워졌다. 남쪽 작가 98명은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정부나 마찬가지여서 보는 시각이 개별적이었다. 그런데 북쪽이 보여준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관계된 곳이었다. 한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 일행은 30도를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곳 모두를 보아야 했다.’

모든 단체관광은 버스 탈 때가 중요하다. 한 명이라도 없으면 버스는 다음 목적지로 출발할 수 없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꼭 한두 사람은 늦는 게 단체관광의 묘미다. 작가라고, 북한 땅에서라고, 다를 바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나이 순서대로 승차한다는 것이었다.



(위) 김훈-남대현 작가, 돈암초 동창 확인 순간 (아래) 6.15 남북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공동선언 민족작가대회에 참석한 황석영, 홍석중 작가


원로작가들은 정해진 시간 십여 분 전에 탑승한다면, 젊은 축일수록 늦었다. 네 대의 관광버스 중 세 대는 에어컨이 없었다. 남쪽에서는 최고대접을 받는데 익숙한 분들이시다. 젊은 실무자들이 외려 죄송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원로작가들은 조금의 불평도 없이 불편함과 찜통더위를 견뎠다.

분단이전의 한반도를 경험했던 원로작가들은 처음으로 밟은 분단이후 북쪽 땅이 마지막으로 밟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 때문인지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듯했다. 분단이후 태어난 작가들은 젊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후에도 북쪽 땅을 얼마든지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 때문인지 답답하고 지루한 일정에 자주 성을 냈다.

단체관광의 진짜 맛은 밤에 마시는 술에 있을지도 모른다. 민족작가대회의 밤들도 그러했다. 낮의 강행군 관광에 매우 지쳤을 테지만, 술로 피로를 풀지 않고는 다음날을 감당하지 못했을 테다. 작가들은 숙소에서만큼은 자유롭기도 했다. 세대별로 출신학교별로 연고문예지별로 장르별로 뭉쳤다 흩어졌다 하며 고려호텔, 향산호텔, 베개봉호텔의 밤은 깊어갔다.

남쪽으로 돌아온 작가들은, 7월과 8월 동안, 각종 매체에 수많은 에세이, 인터뷰, 대담 등을 실었다. 각각 보고 온 북쪽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방북기담을 일별한 한 평론가는 공식적인 것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고 대신 백두산의 풍광이나 평양 맛을 거론할 뿐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방북기들을 통해서, 모든 작가들이 거의 흡사한 생각과 느낌을 갖게 한 유일한 것을 찾아보라면, 백두산일 테다. 백두산에서 바라보던 장엄한 일출과 천지! 그날은 여러 차례 백두산으로 오른 바 있는 남북의 원로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논평한 바에 따르면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한 맑은 날씨였다. 칠대의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숭고함이라고 한 작가도 있었다.

하지만 ‘분지’의 남정현 소설가의 말대로 ‘우리 작가들처럼 사회와 인생에 대해 그 이해력과 상상력이 그렇게 깊고 넓은 측도 드물 것이’기에, 방북기들은 남쪽 작가들의 북한에 대한 섬세한 이해력과 상상력이 깊고 넓게 배인 기록물이랄 수 있을 테다. 그 무수한 방북기들을 읽으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훌륭함을 알 수 있다.

남쪽의 작가들은 북쪽에 대해서 장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촉수가 가장 예민한 장님들이었고, 북쪽은 거대한 코끼리였다. 각각 만진 곳이 달랐다. 어떤 것 하나만 읽으면 이게 코끼리인가 의아하지만, 모두를 읽으니 북쪽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한국문단이 움직여서 겪고 온 방북기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은 아직 묶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과 북의 작가들마저도 만날 수 있었던 소통의 2005년이 까마득한 과거라도 되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는, 남과 북 권력자들이 막가고 있는 섬뜩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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