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 나무] 녹나무

높다란 녹나무 가지에 연초록빛 잎새들이 달리고 바닷가의 파도를 닮은 이 잎들이 바람을 따라 일렁이기도 햇살을 받고 반짝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인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어진 사람이 세상을 사는 모습은 모래밭 가운데서 나는 금덩이와 같고 깊은 산중에 나는 녹나무와도 같다 했다. 물론 어진 이들을 두고 하는 칭찬의 말이지만 녹나무의 뛰어난 자태 역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녹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큰키나무이며 잎이 넓은 활엽수이다. 아주 크게 자랄 뿐 아니라 그 수명이 천년을 너머 오래 오래 살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녹나무 잎은 끝이 길게 늘어 난 타원형이다. 다른 상록활엽수들처럼 만져보면 두껍고 질기다.

잎에는 먁이 가운데 주맥 하나와 측맥이 하나씩 모두 세개의 맥이 있는데다가 정말 파도처럼 울륵 불륵 굽이쳐 달려서 바람이 라도 불러 일제히 흔들거리면 녹색의 파도가 이는 듯도 싶다. 꽃은 늦은 봄에 핀다. 아주 작은 꽃들이 원추상의 꽃차례에 달리는데 꽃은 백색으로 피었다가 조금씩 황백색으로 변해 가므로 눈에 두드러지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사실 녹나무는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저런 기록으로 미루어 예전에는 꽤 큰 나무들이 많았던 모양인데 생활에 깊숙한 연관을 가지고 쓰여지느라 베어진 탓이어서 지금은 보기 쉽지 않다. 물론 심은 나무들은 많다. 그중중문의 도순리의 살아 남은 아주 큰 녹나무들을 천연기념물 16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한자로는 녹나무를 장(樟)으로 쓰며 예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녹나무가 이렇게 수난을 당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녹나무를 절대로 집주위에 심지 않는데 녹나무의 그 특별한 냄새로 인하여 귀신을 쫓는 신통력이 믿어 집안에 심으면 조상의 혼들이 이 나무때문에 제사날에도 집으로 찾아 오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났으면 좋을 것을 이 귀신을 쫓는 능력은 해녀들이 바다물질을 하는데 혹 잡귀가 해칠까봐 각종 연장은 모두 녹나무를 베어 만들게 했으며 목침을 만들어 베고 자야 귀신아 접근하지 못해 편히 잡잘 수 있다고 믿어 지금까지도 노인들은 이 녹나무 퇴침을 찾을 정도이다.

거기에 제주도에서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시급한 환자는 침상에 녹나무 잎이나 가지를 깔고 그 위에 눕게한 다음 방에 불을 지핀다. 그러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실제로 열기로 인해 잎에서 나오는 증기에 녹나무에 함유된 일종의 독성물질이 섞여 나와 환자의 폐와 심장에 충격을 주어 깨어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인공호흡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활성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녹나무에는 장뇌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뇌유는 일종의 향기나는 기름인데 캄퍼(camphor)라고 하여 정말로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녹나무는 목재도 아주 뛰어난 것으로 소문이 나있고 녹나무 잎을 따서 두었다가 잎차로 다려 마셔도 그 맛이 일품이라고도 한다.

지금 새로 잎이 돋아 나무 전체가 노란빛을 띠고 서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체가 황홀하기 그지 없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