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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을 부정문으로 쓰고 싶었다"
[책과 작가] 소설가 한유주
'얼음의 책' 출간… 얼음이 얼고 녹듯 서사가 생기고 사라지는 9편의 단편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그의 소설은 매혹적이고, 모호했으며, 돌연변이적이었다. 어떤 언어로도 요약될 수 없었으며, ‘원소스 멀티유즈’가 될 수 없는 호환 불가능의 문장들을 뿜어내었다. 작가는 지나치게 젊었으며, 그의 놀라운 등단작이 첫 습작에 해당한다는 사실 등은,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극적인 조건들을 만족시켰다.’ (이광호, ‘이야기의 무덤 속에서 글쓰기-한유주의 소설 언어’, 문학과사회 2009년 여름호 중에서)

소설가 한유주의 작품은 원로 세대와는 또 다른 의미의 ‘번역될 수 없는 문학’이다. 원로세대의 소설이 토착어와 우리말로 한국어의 어감을 살리고 있다면, 한유주의 소설은 서사를 파괴하는 지점에서 수사를 뿜어내는 형식이다. 이 파격은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 그 맨 앞에 한유주의 이름을 올려놓게 만들었다.

직관의 글쓰기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유주가 한국문학의 신화가 된 것은 아니다. 2003년 문예지 ‘문학과 사회’ 신인상(소설부문)으로 등단한 그는 여전히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 중의 하나다. 그러나 직관에서 비롯된 일련의 작품으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인정받았다. 작가 의식만으로 소설의 뼈대인 서사를 파괴하는 가하면, 시를 읽는 듯한 운율감을 갖고 있다.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는 문장은 스스로 분열한다. 단어와 문장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그의 작품은 낯설기를 넘어 완연한 소설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때문에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측과 비판하는 측 모두 한유주의 독창성에 대해 이견을 달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써야한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당신들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다. 나는 점점 더 원하는 것이 많아진다.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모든 것을 읽게 될까 봐 두렵다.’ (‘허구 0’ 중에서)

작가로 등장한 화자가 7월 4일부터 17일까지 소설을 쓰는 의식의 흐름을 기록한 이 작품에서 한유주는 자신의 자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작금의 현실에서 말없음을 고민하는 작가이다. ‘눌변의 이야기꾼’이라는 바로 그 역설에서 이 작가는 탄생했다. 때문에 그의 소설은 서사가 뚜렷하지 않다.

“서사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생각하다 보니까, 없애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도 ‘K에게’나 ‘흑백사진사’ 같은 작품에서 서사가 드러나지 않나요?”

신간 ‘얼음의 책’에 실린 단편 ‘K에게’와 ‘흑백사진사’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 있다. 카프카, 혹은 카프카의 작품 속 K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작품 ‘K에게’에서 한유주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믿음과 의심의 반복된 경험,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단편 ‘흑백사진사’에 등장하는 유괴된 아이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쓴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 주된 이 소설집에서 서사의 형식을 갖춘 몇 편의 작품은 모두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이다.

서사가 파괴된 모호한 이야기는 그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 지점이다. 이런 시도가 신선하지만, 독자와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평이 만만치 않다. 3년 전 등단작 ‘달로’이후 줄곧 지적되어온 이 말에 그는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제 작품이 독자와 소통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블로그에 가끔 독자 서평이 올라와요. 분명 읽는 분들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작가의 말에 ‘내게는 단 한 명의 독자가 복수로 존재한다’고 썼는데, 이 말은 두 번째 책을 엮으면서 꼭 써야지 생각했던 말이에요.”

얼음의 책

지난 주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얼음의 책’은 어떤가. 아직도 한유주의 소설이 어렵다면, 제목과 작가의 말을 눈여겨보자.

‘얼음을 얼리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이 글의 첫 문장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의 문장을 쓸 수가 없다. (중략) 얼음을 녹이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싶었다. 나는 기다린다.’

얼음의 책, ‘작가의 말’에 실린 처음과 마지막 문장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넘쳐나는 부정문들, 그래서 독서의 흐름을 끊는 이 불편한 문장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9편의 소설은 얼음이 얼고 녹는 것처럼 서사가 생기고 사라지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고 다만 직관으로 써낸다. 그의 작품에서 부정과 긍정의 진술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은 다만, 부끄러움 때문이다.

‘내가 쓴 문장들은 모두 당신에게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부끄러워서, 한때는,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을 부정문으로 고쳐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인터뷰에서 그는 “원래 지난 겨울 책을 내기로 했는데, 두 번째 책을 내는 게 부끄러워 미루게 됐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문으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발표한 9편의 단편은 ‘나’, ‘너’, ‘당신’의 3 부분으로 나뉘어 묶였다. 앞의 작품 이외에도 순환구조의 작품 ‘육식식물’, 모든 문장을 부정문으로 쓴 ‘장면의 단면’ 등 새로운 형식의 단편이 선보인다. 특히 신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눈에 띈다.

‘내일은 없다. 오늘과 내일은 어떠한 접속사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시간에는 문법이 없다. 시간에는 문장이 없다. 시간에는 단어가 없다. 시간에는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 시간을 설득할 방법은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단편 ‘장면의 단면’ 중에서)

“하우저였나? 플로뵈르의 보봐리 부인을 설명하면서 ‘고대 인간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게 신이라면 근대 인간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게 시간’이라고 말한 걸 읽었어요. 그 말에 동감해요. 절대 시간에 저항하는 게 근대 인간의 면모 인 것 같아요.”

의미를 알 수 없을 듯한 한유주의 작품을 한줄 한줄 읽어내려 때 독자는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며 고뇌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언어를 알게 되는 묘한 쾌감을 경험할 것이다.

9월쯤 시작할 장편은 어떤 모양새일까? 의식의 흐름만으로 장편을 써 낼 수 있을까?

단편 ‘흑백사진사’에서 한유주는 사건의 전개 과정마다 이런 문장을 나열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세 명의 인물들이 등장해야 한다’.

작품 속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기 위해서는 또한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서사와 사람이 넘쳐나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장편을 기대하며 이 부분을 낭독하자, 작가는 “작품을 잘 읽어 주셨네요”라고 말했다.

단어와 문장이 반복, 부정, 역전을 거듭하는 그의 이야기는 아마도 그렇게 시작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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