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윤제림 '그는 걸어서 온다'시인이 말을 부려 만든 주술에 걸린듯한 기분 들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독서의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 책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몇 번의 공백을 허락하면서 접혔다가 펼쳐지기를 반복하는 책들도 있다. 이런 구분이 좋고 나쁨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건 숨을 참고 한번에 모두 읽는가, 아니면 중간에 몇 번씩 심호흡을 하면서 읽는가 하는 호흡법의 문제일 뿐이다.

윤제림 시인의 <그는 걸어서 온다> 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번에 몰아치듯 읽을 책은 아니다. 덕분에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빙글빙글 돌고, 가방 속에서 다른 소지품들과 부딪치고, 의자나 침대 위에서 좀 더 오래 함께한 책이다. 읽다가 그냥 펼쳐둔 책은 퍼덕퍼덕 책장을 날개처럼 놀리는 한 마리의 새 같기도 했다. 나는 두고두고, 새를 길들이듯이 이 책을 읽었다.

시집의 활자들은 다른 책 속의 활자와는 질감도 양감도 달라서 책 속에 실려 있다기보다는 박혀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 이 시집 속의 활자들은 종이 위에 별처럼 박혀 있다. 별처럼 박힌 시어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말을 부려 만든 주술에 걸려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인이 ‘꽃, 술’ 하고 적으면 눈앞에 꽃, 술, 이 나타나고 시인이 ‘꽃, 밥’ 하고 적으면 눈앞에 꽃, 밥, 이 나타난다. 시인이 ‘재춘아, 공부 잘해라’ 라고 말하면 정말 재춘이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시인의 마을 속에서 이웃들이 합심해서 만든 산채비빔밥도 마찬가지다.

시집 속에는 ‘막차마저 놓쳤는지 이십 리 길을 그냥 걸어들어온 가난한 연인들’ 도 등장한다. ‘제아무리 잘 된 영화래봤자 별 다섯 개가 고작인데. 우리들 머리 위엔 벌써 수천의 별들이 떴다’ 고 시인이 말할 때, 책장 속 밤하늘은 내 것이 된다. 수천의 별이 활자를 타고 저 책장 속에서 내 마음으로 옮겨온 것이다.

시집을 펼쳐서 내가 읽던 부분을 찾다보면 마치 헝클어진 아이의 머리를 곱게 빗겨주는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걸어서 온다>를 만나는 동안, 일부러 책갈피를 사용하지 않았다. 흰 책장을 아이의 엷은 머리카락처럼 이리저리 넘기다가 이미 지나간 글자와 지나갈 글자 사이를 손으로 더듬어 찾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촉감을 동원해서 읽는 동안, 나는 이 시집에 등장했던 수많은 활자들에 홀리고 말았다.

급기야 시 속의 어떤 스님이 ‘산길 사십 리를 걸어 부라보콘 하나를 사먹고 산길 사십 리를 걸어서 돌아왔’ 을 때, 나도 부라보콘을 사러 나갔다. 사십 리 길은 아니지만, 걸어서.



윤고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