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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와 미남은 사랑하면 안 되나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지음/ 예담 펴냄/1만 2800원
비현실적 러브스토리 자본주의적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우리는 신혼이었고 아내는 잘 다려진 셔츠의 깃보다도 훨씬 더 눈부셨으며, 저는 매일...커피 믹스 속의 커피 알갱이 수만큼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 붓는 남자였습니다(가진 게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어쨌거나 그때

그래도 절... 사랑해 줄건가요?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됐노라고, 작가는 이 책의 말미에 적고 있다. 사랑에 눈 먼 남자에게 여자는 자신이 '아주 못 생긴' 여자라도 사랑하겠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남자의 머뭇거림은 소설이 됐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비현실적으로 못생긴 여자와 잘 생긴 남자가 사랑을 하는, 아주 비현실적인 러브 스토리다. 34살의 나는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고 있다. 그리고 오래 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여인을 생각한다. 그녀는 나에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앨범을 선물했다. 1986년 스무 살, 나는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인생의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난다. 정신적 스승이 돼 주던 요한과 못 생긴 그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늘 시청하는 토요일의 쇼프로에서... 느닷없이 요들송 부르는 아저씨가 나와 요로레이리요 레이리요 레이요르리 하는 기분이었다.'(82쪽)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즐거웠으며 늘 함께이고 싶었지만, 요한은 가족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그녀 또한 외모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의 상처를 입고 작가의 곁을 떠났다. 정신적 지주인 요한은 작가를 대신해 이야기 한다.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174쪽)

시간이 흘러, 요한과 그녀를 떠나 보낸 나는 어느덧 성장해 요양원에 들어간 요한과 작가를 대신해 이야기 한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308쪽)

아주 못 생긴 여자와 잘 생긴 남자, 권력의 형태가 뒤바뀐 소설의 설정은 그래서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99%의 사람을 향해 작가는 말한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와와하지 마시고 예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418쪽, 작가의 말 중에서)

● 나의 집을 떠나며

현길언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1만 원

<회색도시><투명한 어둠> 등으로 알려진 원로작가 현길언의 소설집. 그동안 꾸준히 발표해 온 '관계' 연작, 그 중에서도 가족의 의미에 대한 성찰과 허위를 고발한 4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 소설을 모았다. 주로 제주와 관련된 현안과 종교적 의미에서의 구원과 용서 등 거시적 문제를 들여다보던 작가는 신간에서 더 '근원적 문제'에 대해 사유한다.

● 줄리아의 즐거운 인생

줄리아 차일드 지음/ 허지은 옮김/ 이룸 펴냄/ 1만 3700원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아담스 주연의 영화 '줄리 & 줄리아'의 원작. 평범한 미국 주부가 프랑스 음식에 매료돼 최고의 프랑스 요리사로 거듭나는 과정이 펼쳐진다. 1948년 남편을 따라 파리에 정착한 저자는 매혹적인 도시에 사로잡혔고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파리와 마르세유에서 최고의 요리사를 접한 그녀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요리를 배우게 된다.

● 검은 새의 노래

루이스 응꼬씨 지음/ 이석호 옮김/ 창비 펴냄/ 9800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작가 루이스 응꼬씨의 대표작.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지배하던 남아공을 무대로 흑인 청년과 백인 소녀간의 성(性)을 통해 인종과 국가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인종주의가 강제하는 부조리와 모순이 처한 개인의 내면을 묘사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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