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박정희 평전'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탐구

그에 관한 책이 그렇게도 많건만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책은 흔하지가 않다. 조갑제의 전기와 이인화의 소설은 일종의 영웅신화를 쓴다. 반면 박정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개혁진영에서는 그를 진지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인물보다는 구조!”를 외치면서 그의 역할을 축소시키는데 급급하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나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문제를 정치인에 대한 연구(?)로 환원하는 한국적 정치평론의 풍토에 반대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정치인에 대한 연구조차도 빈약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사회가 아직도 당면한 문제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 정치평론이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에 일말의 함의라도 있다면, 저 독재자의 기치에 사람들이 자발적인 동의를 보내게 된 데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탐구는 결국 박정희라는 정치인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정치학자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는 지금으로선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을 탐구하고자 할 때 찾아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2001년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것이라고 하며, 그의 사후인 2006년에 출간되었다.

전인권은 본업인 정치학자로서가 아니라 남성학자로서, 2003년 <남자의 탄생>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다. <남자의 탄생>에서 그는 당면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질책한 뒤, 그 무능의 기원을 탐구하기 위해 유년시절로 되돌아간다.

한국 남성의 탄생과정을 기술하는 그의 작업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공간의 문화를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이 보편적인 작업은 그의 본업인 정치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을까? <남자의 탄생>에 나오는 ‘고아의식’이란 개념들에 대한 몇몇 주석들은, <박정희 평전>의 ‘심리적 고아’의 개념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히 군인이 되기 전의 박정희에 대한 ‘정치 전기학’적인 접근은 기존의 자료들을 풍부하게 활용하면서도 그만의 비평적 시각으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가령 박정희식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비평은 일품인데, 그가 독립운동에 속해 있었다거나, 그에겐 전혀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식의 당파적으로 편향된 비평을 넘어 ‘일제의 통치 자체가 아니라 일제의 차별에 대해 분노한’ 그의 민족주의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 책은 꼼꼼히 읽다보면 더 진전된 비평을 요구하는 생각의 단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전인권에게 그 작업을 계속해 나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이지 유감이다. 그를 위해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그의 유작들을 꼼꼼히 읽고 생각을 더 이어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