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전쟁술 (The Art of War)'/앙투안 앙리 조미니 지음/ 이내주 옮김/ 책세상 펴냄끝나지 않은 1차대전 관한 역사학계 논쟁에 새로운 관점

(사진 우측 흑백) 나폴레옹 (Napoleon) 1955|감독 : 사카 기트리

대부분의 역사책은 전쟁 장면을 생략하고 역사를 서술한다. 전쟁의 발발에서 곧바로 전쟁의 결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반대로 전쟁사를 다룬 책들은 주요 전투만을 중심으로 전쟁을 서술한다.

그러니 이 둘을 같이 읽으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톱니바퀴처럼 차르륵 맞물려 들어간다. 나는 석사논문 주제로 1차대전을 골랐다. 외교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인 1차대전 발발사와 전쟁사에서 가장 논란 많은 전쟁인 1차대전을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논문을 구상하면서 부딪친 첫 번째 문제는 전쟁을 들여다보는 지적인 도구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군사전략 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고전, <전쟁론>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에 프로이센 군에서 복무하면서 천재 나폴레옹의 전략 운용을 적의 입장에서 체험했다.

물론 그 결과는 쓰라린 패배였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나폴레옹이 보여준 근대전쟁의 참모습을 세련된 통찰력으로 정리하고 풀어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전쟁론>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전쟁 이론서로 남아 있다. 모두가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책을 참고한다는 뜻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1차대전에 관한 역사학계의 논쟁에서 전쟁 관련 문건들을 해석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이 등장한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에 따라 자료를 읽어내는데, 유독 한 사람만이 마치 클라우제비츠를 모르는 것처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자료를 해석하고 논쟁에 불을 지폈다.

도대체 이건 뭘까? 그 관점에 대해 파고 들어가자 영국의 전략이론가 리델 하트가 나왔다. 그리고 모종의 전략사상적 계보가 나타났다. 그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자 드디어 클라우제비츠와 동시대를 살았던 지적인 라이벌 앙투안 앙리 바론 드 조미니가 나왔다.

이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경쟁 관계를 형성한다. 조미니는 스위스 출생으로, 프랑스 혁명기에 나폴레옹 군대에 들어가 장교로 복무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적으로 싸웠던 것이다. 그리고 클라우제비츠의 ‘절대전쟁’ 개념이 괴테 시대 독일식 낭만주의의 산물이라면 조미니의 이론은 이성을 중시하는 프랑스식 합리주의 혹은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싸움’ 자체를 중요시한다면 조미니는 좀 더 효과적으로 싸우는 법, 즉 ‘기동’을 강조한다. ‘화력과 기동’ 사의 오랜 논쟁이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둘 중 누구의 주장이 더 우세했을까. 생전에는 조미니가 월등히 유명했고, 이후의 역사는 클라우제비츠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론은 결국 희대의 천재 나폴레옹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두 가지 시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니콜라이 황제가 프랑스로 진군할 때 두 사람 다 러시아군 군복을 입고 참전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둘 사이의 관계가 무조건 대립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물론 훌륭하지만 이 책은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하는 것처럼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은 아니다. 저자인 클라우제비츠가 처한 역사적 특수성이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를 이해하기 위해 클라우제비츠의 숨겨진 반쪽, 조미니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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