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언신간 '랑의 사태' 출간9편 이야기에 비주류 인생, 삶의 '사태' 그려

“나의 희망은, 당신이 모르는 최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들켜버린 나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당신이 모를 때, 나는 그런 나에게서만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소설집의 끝에서, 작가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이 말이 작가의 진심을 드러낸 말인지, 아니면 반어법인지 몇 권의 소설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몇 권의 소설을 통해 그가 줄곧 ‘이상하고 매력적인 비주류’를 그려왔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가 이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건 분명해 보인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년, 소녀를 만나다>로 등단한 그는 작가 김도언이다.

“약속 시간을 다섯 시로 바꿔도 될까요?”

인터뷰 시간을 바꾼 그는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카페에 들어왔다. 인터뷰가 있던 날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는 “종교는 없지만, 비를 종교처럼 좋아한다”며, “카페 오기 전, 선배 만나 소주를 마셨다”고 양해를 구했다. 약간의 취기는 대화 분위기를 돋운다.

“더 드셔도 돼요.”

작가는 맥주를 시켰고, 목소리는 한껏 고양됐다.

당신이 모르는 최후의 사람

‘이상하고 매력적인 비주류’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전 발표한 소설집 <악취미들>을 비롯해 장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에서 그는 언제나 비주류 인생들의 문제적(?) 장면을 드러냈다.

단정하고 순정한 시를 썼던, 요절한 천재시인은 불륜에 빠진 변태 성애자였고, 그의 형은 동생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인 제수에게 참을 수 없는 성욕을 느낀다.(단편<권태-악취미들 10>) 시인 지망생은 군대에서 사령관에게 성폭행 당하고, 10년 후 지방 소도시의 시장 후보로 나선 사령관을 증오와 사모의 혼융된 감정 속에서 총살하려 한다.(단편 ) 어렵게 얻은 딸을 자신의 운전 실수로 잃은 택시운전사의 아내는 남편의 ‘슬픈 택시’ 뒷자리에 앉아 승객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자신을 학대한다.(단편 <택시 드라이버-악취미들8>) 그는 장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에서도 서울 변두리 학원 국어교사 선재를 주인공으로 무수한 등장인물이 서로의 꼬리를 물면서 음울하고 답답한 일상의 풍경을 담았다.

“오히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눈길이 가요. 텔레비전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볼 때, 저는 가수를 안 보고 백댄서만 보거든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생래적인 건데,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전혀 안 가요. 자연스럽게 소설에서도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생래적’이란 말에서 읽히듯, 그가 주목하는 비주류는 여성과 노동자로 집약되는 정치적 소수자의 의미가 아니다. 이를 테면, <오발탄>의 철호나 <날개>의 나(화자)와 같은 이를 그는 주목한다.

“1950년대 작품을 좋아해요. 손창섭, 장용학, 선우휘, 이범선, 서기원 작가의 작품들. 특히 장용학 선생 작품을 보면 제가 말하는 비주류의 인물들이 많이 드러나죠.”

신간에 실린 9편의 작품 중 7편의 작품에 소설가가 주요인물로 등장하고 또 그 중 몇 편에서 자전적 모습이 드러난다. 인터뷰 내내 소설 속 비주류 인생과 작가의 얼굴, 취기 섞인 대답이 겹쳐졌다.

“이번에 웹진 <나비>에 장편 연재 시작하면서도 쓰셨죠? ‘나의 소박한 꿈은 이상하고 매력적인 비주류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네. ‘궁극적으로는 당신이 모르는 최후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도 썼어요.”

랑의 사태

신간의 제목이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어색하다. <랑의 사태>. 뜻을 전혀 모르는 말들의 조합 같지 않은가. 표제작은 여자친구 ‘랑’의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다. 작가의 입을 빌리면, ‘랑의 주변 사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쓰는 동안 나는 줄곧 ‘사태’라는 개념에 골몰해 있었다. (중략) 사건이나 상황 따위와는 다른, 좀 더 본질적이면서도 포괄적인 개념을 가진 어떤 문제적 상황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사건은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종료되는 이야기예요. 해석의 여지가 없죠. 그래서 소설 속에서 사건만을 이야기하는 건 한계가 있고, 사건 대신 뭔가를 끌어들여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저에게는 그게 ‘사태’였어요.”

<랑의 사태>에서 화자는 삼촌이 펴낸 시집을 읽고 있는 랑을 처음 만난다. 그녀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모텔 맨 꼭대기 666호에 살고 있다. 랑은 자신을 버린 부모들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다고 믿어버린다. 어느 날 랑은 실종되고, 화자는 666호에 있는 커다란 냉장고 안에서 랑을 찾아낸다. 표제작 역시 비정상인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이지만, 이번 작품집에서 눈여겨 볼 점은 캐릭터나 사건이 아닌 이들을 둘러싼 사태다.

작가는 “형태가 없는 소설이라 처음 접한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기는 어렵다. 랑이라는 문제적 캐릭터에 둘러싸인 여러 사태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작품을 썼다. 캐릭터 중심의 소설이 아니라, 아직 실험중인 소설이다”고 말했다.

1인칭으로 쓰인 9편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비주류 인생, 구체적으로 이들 삶의 ‘사태’에 주목하고 있다. 표제작과 함께 연작 소설로 쓰인 <권태주의자> 역시 ‘사태’를 드러낸 소설이다. 일정한 사건의 나열 없이 ‘권태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소설가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은 일면 작가의 모습과 겹쳐 읽히기도 한다.

남몰래 사귀는 띠 동갑 애인이 사실은 장애인의 남편임을 발견한 후, ‘최고의 연인’이었다고 생각하는 출판사 편집장이 있는가 하면(<내 생애 최고의 연인>), 1루 수비를 맡은 선수는 상대편 비주류 선수에게 우리 팀의 전술을 알려주며 인간애를 느끼며(<전무후무한 퍼스트베이스맨>), 부패하거나 썩어가는 것들에 저항하기 위해 냉장고에 들어가기도 한다(<랑의 사태>).

작가는 상식과 관습의 울타리를 벗어난 일련의 사태를 제시하며,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하는 사회의 근거는 비합리적이었다고 말한다. 어느 사회건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격리시키는 근거에 권력의 자의적 결정이 개입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문학웹진 <나비>에 장편 <꺼져라 비둘기>를 연재 중인 그는 집필을 위해 8월 말 아이오와대학으로 떠난다. 작품 계획을 묻자, “우리를 둘러싼 사태를 계속 주목할 것”이란 대답이 따라온다.

“언제 종료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태라는 건 소설의 기법이 아니거든요. 한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프레임이에요. 이 화두가 작품을 쓰는 동안 계속 함께 하는 거죠. 이상하고 매력적인 비주류가 될 때까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