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더덕

아주 아주 오래 전, 식물을 처음 공부하던 시절, 숲길을 걷노라니 한 선배님이 그러셨다. “향기가 난다. 이 근처에 더덕이 있나 봐! 잘 찾아 봐.” 초보 식물입문자 시절, 보지도 않고 잠시 스친 인연으로 식물이 가득한 이 숲에서 더덕을 알아낸 선배의 한 마디는 참으로 경이로웠다. 물론 이제는 나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더덕은 처음 내게 향기로 다가섰다. 익숙한 꽃향기가 아닌 몸 전체로 반응하는 그 그윽한 식물향으로…

더덕을 보고 또 한번 크게 감동했던 것은 꽃 구경을 하고 나서이다. 워낙 먹는 것으로 유명한 식물인 까닭에, 네 장의 잎들이 마주보며 달리는 독특한 덩굴식물이므로 꽃을 몰라도 이미 식물을 알고 있었고, 우거진 숲에서는 꽃을 잘 피우지 않는 탓에 더덕을 알고도 한참 후에나 꽃을 보았다.

먹는 식물들이 갖는 실용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매우 개성 있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초롱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달리는 더덕의 꽃은 녹황색이 돌면서도 자주색 점들과 무늬들이 멋지게 어울려 이런 꽃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세 번째 추억은 양심고백인데, 울릉도에 갔을 때이다.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번잡하지 않고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던, 울릉도의 특별한 식물들 구경에 넋을 잃고 해변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 길 옆 풀밭 같은 곳에 꽃이 하나 피어 있었고 옆에 더덕이 향기가 솔솔 풍기며 자라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땅을 헤집어 보니 큼직한 더덕 뿌리가…, 횡재다 싶어 캐보니 옆에도 보이고, 또 그 옆에도 보이고, 한 10분쯤 무아지경에서 그러고 있었을까. 저 멀리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올라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 심어 두었던 밭이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도망을 쳤고, 흐르는 물가에서 손을 씻었건만 손톱 밑의 흙들은 왜 그렇게 없어지지 않는 건지. 그 이후로도 한동안 오토바이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사람이 죄 짓고는 살지 못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물론 그날 후배들과 저녁에 적절하게 두들겨 고추장 앙념해서 맛있게 더덕을 구워먹었다. 내 생애 최고의 맛 중에 하나였다.

그 더덕이 이즈음 꽃이 핀다. 왜 더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명확치는 않지만 향약집성방같은 책에 가덕(加德)이라 표기되어 있어 가는 이두식 표기로 ‘더할 가’이니 ‘더’라 읽어야 하고 덕은 ‘덕’이라 읽는다는 설명도 있다.

더덕은 당연히 뿌리를 갖가지 재료와 방법으로 요리한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말린 것을 사삼이라고 하며 귀한 약재로 친다. 특히 열을 다스리고, 가래를 삭혀주고 장을 튼튼히 하며, 독을 없애주는 등 무궁한 약효를 자랑하고 있다. “인삼(人蔘)·현삼(玄蔘)·단삼(丹蔘)·고삼(苦蔘)·사삼(沙蔘)을 오삼(五蔘)이라고 한다. 백삼이라고도 부른다. 봄엔 어린 잎을 삶아 나무로 먹거나 쌈을 싸먹어도 향긋하니 좋다.

마당이 있으면 덩굴을 올려 꼭 키워보고 싶은 특별한 식물이 더덕이다. 그 더덕의 꽃이 이즈음 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