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무릇

무릇이라는 식물의 이름을 들으면 잘 알고 있는 식물일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산과 들에 나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무릇의 꽃송이를 보면 그 고운 모습에 감탄할 뿐 이름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이들은 참 드물다.

자연을 잘 이용하며 살았던 옛 어른들의 말씀으로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요즈음 사람들의 생활과 자연은 거리가 있다는 증거인 듯하다.

무릇은 한 여름에 꽃이 피어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웃나라에도 두루두루 분포한다. 무릇이 주로 자라는 곳은 숲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숲 속이라도 키 큰 나무들이 없어 하늘이 그대로 드러난 풀밭사이, 들과 밭가에서 주로 자란다.

2장씩 돋아나는 좁고 긴 잎은 봄과 여름 두 번 나오는데 분홍빛 작은 꽃송이들이 마치 촛불처럼 줄기 끝에 모여 예쁘게 달리는 시기에는 잎을 볼 수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같은 특성을 가진 석산을 꽃무릇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뿌리를 캐어보면 길이 2~3cm의 둥근 비늘줄기가 나오는데 그 겉에 흑갈색이 돌고 끝에는 수염뿌리가 달린다.

꽃은 7~9월에 핀다. 난초같은 잎새 사이에서 20~30cm정도의 꽃자루가 나오고 그 끝에 분홍빛 작은 꽃송이들이 줄줄이 달려 아주 예쁘다. 꽃차례의 길이는 4~7cm정도 되는데 간혹 그 끝이 카이젤 수염처럼 꼬부라져 재미나다.

무릇이라는 이름도 지역에 따라서는 물굿잎, 물구, 물긋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면조아(綿棗兒), 천산(天蒜), 지란(地蘭) 등으로 쓰며 영어이름은 재패니즈 스퀼(Japanese squill)이다.

모습은 낯설어도 이름은 설지 않은 이유는 옛날에 많이 캐어먹던 식물이기 때문이다. 알뿌리, 정확히 말하면 땅속에 묻혀 뿌리처럼 보이는 비늘줄기(鱗莖)를 캐어먹는데 그냥 먹기보다는 오래오래 졸여 조청처럼 고아먹었다고 한다. 뿌리를 캐어 껍질을 벗기고 삶고 우려서 찧고, 엿기름과 함께 섞여 삭힌 후, 고아 만든다.

손질한 비늘줄기는 간장에 졸여 먹기도 하고, 어린 잎을 데쳐 매운 맛을 우려내고 나물로 무쳐먹기도 했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 어렵던 그 옛날에는 배고픔을 덜어 주는 구황식품으로도 요긴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붉은 벽돌로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며 소꼽놀이하던 시절에 많이 등장하던 식물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 비늘줄기는 약으로도 쓰인다. 생약명은 야자고 또 전도초근이라고 하는데 피를 잘 돌게 하고 독을 풀어주며 부은 것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작용이 있으며 약리실험에서는 강심, 이뇨, 자궁수축작용이 밝혀져 있다.

밭에서 나면 잡초였으니 그 누가 재배나 번식법을 따로 연구한 사례는 없다. 일반적으로 해가 잘 드는 곳도 좋지만 반그늘진 곳이 더 좋다 하고 수분을 함유한 습하고 토심이 깊고 유기질이 많은 비옥한 토양이 좋다고 한다. 한여름의 들판은 무릇이 있어서 아름답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