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넘나들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을 매혹한 세계미술사줄리언 벨 지음 · 신혜연 역 · 예담 펴냄 · 5만5000원

인간이 창조한, 또한 인간을 지배한 역사, 문화는 주로 주류 중심으로 편재되고 학습돼 왔다. 흔히 알고 있는 세계사가 사실 서양에 무게가 쏠린 서양사인 것이나 문화사가 서구 중심으로 전개되 온 것인냥 인식되는 것이 그러하다.

미술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거시 미술사는 주로 서양 · 유럽 중심으로 르네상스부터 근대 미술에 비중을 두어 전개돼 왔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미술서인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원제가 "Story of Art", 그냥 '미술 이야기' 이지만 한국어 판에서 '서양미술사'로 바뀌었다. 비록 이슬람과 중국의 중세 미술을 독립된 장으로 다뤘지만 책의 절대 분량이 유럽 중심의 서구 미술로 채워진 까닭이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은 종래의 미술서와 차별된다. 책은 기존 서양미술사의 지역적,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세계미술사'를 표방한다. 저자 줄리언 벨은 런던미술학교 '시티 앤 길드'에서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가르치는 화가겸 비평가로 책 서문에서 집필 원칙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미술사가 어떤 독립적인 미적 영역을 향해 열린 창이라기보다는 세계의 역사를 우리에게 되비춰주는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적 변화의 기록들은 아무리 방향이 뒤바뀌고 그 내용이 변해도 어떻게든지 사회적, 기술적, 정치적, 종교적 변화의 기록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

미술만의 역사가 아니라 미술과 역사의 관계성에서 나타난 인간과 세상과 시대를 미술작품을 통해 보여주겠다는 얘기다.

책은 연대기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같은 단락에 동 · 서양의 미술사를 함께 언급하는 등 시대와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미술의 발달과 영향을 자유롭게 언급한다. "세계 미술의 다양성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공감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는 서양미술사를 가장 방대하게 다룬 H.W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미술을 과거와 현재와의 상호 연관 속에서 새롭게 인식했으면서도 '시간성'에 머문 것과도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원시 미술부터 현대 미술의 데미언 허스트까지 망라하면서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 미술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미술로는 조선시대 윤두서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일본과 유럽에서 활동 중인 이우환을 포함시켰다.

저자는 윤두서에 대해 "서양 문헌을 접하면서 한국의 유교를 근대화하려는 개혁의 움직임에 연루된 이 박학한 양반은 알브레히트 뒤러처럼 내면에 대한 정밀한 탐구를 시작했다"고 평가했다.(268쪽) 이우환의 1990년작 '바람과 함께'에 대해서는 "'바람과 함께'라는 제목의 연작 중 한 점인 1990년 작품은 흔적들 외에 다른 것도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 주는 말 외에 다른 것도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466쪽)

책은 회화, 조각 등 여러 분야의 작품 352점에 다양한 기록들을 함께 수록해 이해의 폭을 넓혔다. 또, 작품이나 작가와 관련된 부분에 한정하지 않고 작품의 대상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당시의 사회와 문화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문득 미술사를 개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조망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다만 시공을 넘나드는 기술 대상의 전환에서 논리적 인과관계가 모호하거나 특정 지역을 소홀히 다른 것은 다소 거슬린다. 중국과 일본 미술을 상세하게 언급한데 반해 한국 미술이 표피적으로 언급된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저자가 서양 중심에 함몰되지 않고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세계미술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