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동시화'옛 시인의 창작과정 살피며 펼쳐지는 대로 한 대목씩 곱씹는 여운

옛 글은 옛 날의 글이 아니다. 새 글의 태자리다. 무릇 걸어온 길을 알아야 걸어갈 길이 보인다. 나는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글 쓰는 자의 겸양으로 보지 않는다.

'밝힐 따름이지 짓지 않았다'는 공자의 토로는 말하는 것들은 말하여진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새 글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보태는 것에 가깝다. 어떤 글도 평지돌출은 어렵고 체외수정은 어림없다.

조선 전기의 문인 김종직이 일찍이 읊었다. '시서의 오랜 업적이야말로 창으로 기장을 찧기요/ 문필의 새로운 공이라 한들 수달이 잡은 고기를 늘어놓은 격' 그는 창작의 성취를 숫제 의심했다. 새 것은 날 것의 생뚱함이 있고, 묵은 것은 낡지 않고 곰삭는다.

나는 삼복 내내 시화류(詩話類)를 읽었다. 먼지를 털어낸 옛 글은 질동이에서 꺼낸 김장처럼 새뜻하다. 이규보와 서거정과 홍만종의 시화에 나온 자투리 글만 읽어도 시간이 죽고 더위가 가신다.

시화는 시작에 얽힌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들추는 장르다. 정지상과 김부식이 시구 하나에 목숨 걸고 싸우는 야담이 있는가 하면, 원작자가 잘못 알려진 시를 까발리는 대목이 있고, 누구는 누구의 시를 베꼈느니 하는 날선 논쟁도 있어 흥미롭다. 내 손에 가장 오래 머문 시화집은 우리 한시로 엮은 '동시화(東詩話)'다.

이 책은 한문으로 쓰인 이 땅의 마지막 시화집으로 지은이는 회봉 하겸진이다. 그는 근세의 영남지역 문인이다. 면우 곽종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가 책 말미에 밝힌 저술의 기준은 관후하다. '전할 만한 일들에서 고르되 그 시가 훌륭한지 따지지 않았다. 훌륭한 시들에서 고르되 그 일이 전할 만한지 따지지 않았다.'

계몽과 미학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니 격물치지와 음풍농월이 다툴 일 없고, 담박함과 농탕함이 이웃처럼 어깨를 겯는다. 두텁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가 있는가 하면 괴이하고 뒤틀리고 요염한 시가 빠지지 않은 것이 이 책의 너름새다.

다른 시화집처럼 '동시화'도 창작과 모방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짚고 넘어간다. 시화의 오래된 글감이 곧 표절이다. 학문에서는 반 발짝만 빗겨나도 남의 땅이다. 흑심을 품지 않아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면 눈총을 받는 것이 이 동네의 살풍경이다. 하물며 알고도 남의 땅에 발 디디다가는 치도곤이 떨어진다.

두 글자를 빌려왔지만 환골탈태하면 '도약'이요, 한 글자를 빌려도 구태의연하면 '답습'이다. 모방은 시 짓기의 괴로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고음(苦吟)'의 처절함이 찾아낸 은신처가 모방이다. 하여도 은신처는 눈 밝은 이에게 발각되고 만다.

'동시화'는 지은이 스스로 '심심함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겸양을 보였지만 무엇보다 '창으로 기장을 찧는' 옛 시인의 지난한 창작과정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한 쪽씩 읽기에 족하다. 통독한들 소화하기 어렵다. 펼쳐지는 대로 한 대목씩 곱씹는 것이 여운이 남는 독법이다.

손철주 출판사 '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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