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 5년간 발표한 단편·중편 묶은 소설집 '세계의 끝…' 출간

'흔히 사람들은 언론이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트집만 잡는다고 나무라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론 본연의 구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사인> 34호 '나눔에는 토를 달지 않는 법' 중에서)

지난 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 한 언론인이 남긴 말이다. 뚜렷한 대안 없이 연일 촛불시위를 생중계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태도에 대해 그는 "언론이란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했거나, 혹은 누군가 감추려는 일을 햇빛 아래 드러내기만 하면 족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은 그 문제를 풀어갈 발판을 만들어 둔 셈이니까.

마찬가지로 '왜 해결하지도 못할 우울한 이야기만 쏟아내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똑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당신과 내가 고민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세계로 접어든 것이라고.

소설가 김연수는 이런 방식의 소통을 꿈꾼다. 지난 9일 만난 그는 "소설가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다루는 건 어울리지 않지만, 소설이란 어쨌든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니 앞으로도 사회적 주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 그의 대표작은 늘 최신작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장편 <밤은 노래한다> 발간 후 "김연수의 대표작은 늘 그의 최신작"이라고 평했는데, 2000년 대 김연수 작가의 행보를 미루어 볼 때 이 말은 꽤 적확한 표현인 듯싶다. 20세기의 비애를 응시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20세기적 감수성을 21세기 문체로 빚어내기 시작했다.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 문학동네)은 1991년 대학생을 작중화자로 내세워 거대 담론이 사라진 공간에서 개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보여준다.

1930년대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쓴 장편 <밤은 노래한다>(2008, 문학과 지성사)는 이념이 아니라 연인의 부재로 인한 세계의 몰락에 초점을 맞췄다. 세계를 바라보는 꾸준하면서도 집요한 시선, 단정하면서도 밀도 높은 그의 문장은 김연수를 200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시켰다.

등단 16년차의 그는 3~4만 명의 고정 독자를 가진 스테디셀러 작가다. 그는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다음 작품을 계속 쓸 수 있는 정도가 되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작품 곳곳에 박힌 '너무나 많은' 상징과 의미는 그가 수 만 명의 독자층을 형성하는 이유와, 독자층이 그 이상 확장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김연수의 소설은 읽는 사람 각자의 작품으로 다시 탄생한다. 그러나 동시에 독자에게 꼭 그 만큼의 노동력을 요구한다. 그가 쓴 한 중편소설의 화자는 바로 작가 자신이 처한 입장을 말하는 듯하다.

'소설가에게 고통이란 자기가 쓴 소설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책이 안 팔리는 일이지요.' (중편 <달로 간 코미디언> 중)

"제가 쓰고 싶은 걸 다 쓴다고 생각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짧은 문장 안에 많은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이때 '더 많은 사람에게 소설을 읽히게 하기 위해 태도를 바꾸느냐' 의 문제가 있는데 그걸 바꾸면 이야기 자체가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독서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이 대답이 미안한지, 그는 "예전 내 소설에 비하면 굉장히 쉬워진 것"이라며 눙친다.

"읽기 어렵게 쓴다는 게 못 쓴다는 거죠. 지금 제가 더 잘 쓰게 된 것 같아요."

# 소통에 관한 아홉 가지 단상

지난 주 그가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를 내 놓았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발표한 단편, 중편을 묶은 이 책에서 독자는 그의 바뀐 두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소설가는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어느 정도 자기 이야기를 할 게 없어지는 시기에 '소설을 못 쓸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가져요.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 '내 얘기를 안 써도 소설을 쓸 수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을 찾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가 타인의 이야기로 소설을 빚어낼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다.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쓰면서부터 운영한 블로그에서 독자들은 그에게 독후감을 보내왔고, 그는 타인과 소통의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세계와 개인이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촘촘히 이어진다는 것도 이 소설집을 만드는 5년 동안 확인한 사실이다. 작가는 단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의 LA폭동 사건의 화제현장을 쓰던 당시 불타는 숭례문의 사진을 보게 됐고, '소설 속에다 쓰던 불꽃이 현실로 옮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317쪽)노라고 적었다. 그는 용산참사가 등장하는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등 여러 작품은 최근 몇 년 간 일어난 현상들을 모티프로 썼다.

"사회적인 변화나 다른 사람과 나눈 이야기들이 소설에 영향을 줍니다. 2007년 이전 '내가 뭘 써야 겠다'는 생각에서 소설을 썼다면, 그 이후에는 그냥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것에 가까워요."

중년의 미국 여성작가를 화자로 내세운 단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는 LA폭동 때 죽은 열일곱 살 연하의 연인 케이케이의 나라, 한국을 찾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케이케이가 살았던 곳을 찾기 위해 통역사 혜미와 길을 나서지만 그곳은 찾을 수 없었고, 작가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통역사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만다. 소통의 부재는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이 공유한 고통을 통해 해소된다.

또 다른 단편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도 마찬가지.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아내와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인도인 사트비르 싱이 미숙한 서로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외로움'이라는 두 사람의 공통된 고통 때문이다.

아홉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 하려는 건 소통이다. 소통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 볼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316쪽, '작가의 말 중에서)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