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이덕형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4만 9000원)동슬라브인의 신화적 상상력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학까지

저자 이덕형 씨의 프로필은 특이하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저자는 프랑스에서 러시아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가 공부했던 80년대에는 한국인의 '소련 유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학 4년 동안 이콘(icon, 종교 미술과 관계해 회화 ·조각 ·공예품 등에 나타난 형상으로 특정한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 구도가 일정한 양식에 의해 유형화된 미술) 제작기법을 배우면서 러시아 정교사상과 비잔틴 문화를 탐구한 저자는 이후 러시아에서 러시아 사상사를 다시 공부한 뒤 귀국해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하자면, 그는 러시아 문화, 그중에서도 러시아 예술양식을 설명하는 데 능통한 사람이다. 신간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은 그의 이 이력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와 컬러 도록, 책의 부피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이 책은 제목처럼 러시아 문화예술의 1000년을 '보여'준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책은 러시아 문화의 종적, 횡적 소개를 시도한다.

러시아 문화의 모태가 되는 동슬라브인의 신화적 상상력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비잔티움부터 정교를 수용하는 슬라브 세계, 러시아 민중 문화, 표트르 대제의 개혁으로 시작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더니티를 다룬다. 이어 러시아 문화의 '위대한 사실주의의 세기'로 간주되는 19세기 문화와 20세기 러시아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미학을 소개한다.

'9~13세기 키예프 루시 시대의 문화 현상들의 공시적 구조는 13~15세기 몽고 타타르족의 지배, 15~18세기 모스크바 시대의 러시아, 18~20세기 페테르부르크 시대의 러시아라는 각각의 문화 구조가 통시적으로 중첩되면서 동일성 속에서 역사적인 변화를 거칠 때, 그것은 체계들의 체계가 되는 것'(17쪽, '선결적 전제-러시아 문화의 종합적 이해' 중에서)

'그리스도를 떠나서 러시아인들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악령><백치>,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사제들><봉인된 천사>등과 같은 작품과 고골, 톨스토이, 체호프 등의 작품에도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러시아 정신문화적 맥락에 반영되어 예술적으로 승화되고 있었다.'(329~330쪽, '성스러운 러시아의 정교 문화' 중에서)

거대한 문화의 굴곡을 통사적으로 다루는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지나친 도식화와 보편적 성격부여가 러시아 문화 자체가 지니는 다양한 개별적 특수성의 수많은 예들을 간과하는 우룰 범할지도 모른다."(815쪽, 맺음말) 그러나 한 문화권에 대한 폭 넓은 성찰은 우리의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도 있을 터다.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해설, 수 백장에 달하는 사진이 저자의 열정을 짐작케 한다.

# 한창훈의 향연
한창훈 지음/ 중앙북스 펴냄/ 1만 1000원

소설가 한창훈의 첫 산문집. 특유의 걸쭉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의 작가는 바다와 섬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다. 3부로 구성된 산문집에는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소설의 모태가 된 기막힌 삶의 체험들, 바람같은 작가의 내면이 유려한 문장을 통해 펼쳐진다.

# 저녁이 아름다운 집
구효서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펴냄/ 1만 1000원

중견 작가 구효서의 소설집. 2006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인 '명두'를 비롯해 단편 9편이 수록됐다. 죽음을 앞둔 남편이 화자로 등장하는 표제작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비롯해 여공 출신의 죽은 막내 누이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TV, 겹쳐' 등 죽음과 삶의 그늘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예옥 펴냄/ 1만 2000원

일본 근대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행인', '마음'과 함께 나쓰메 소세키의 후기 3부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이번에 처음 국내 번역됐다. 친구 스나가의 이모부 다구치에게 어떤 남자의 행동을 관찰해서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게이타로. 하지만 사건 진상에 다가갈수록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그 과정에서 게이타로는 스나가와 그의 사촌인 지요코, 스나가와 그의 어머니를 둘러싼 갈등에까지 휘말린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