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만 5000원기발한 상상력·자유로운 사고로 저자의 영혼 울린 작품 소개

'아주 가끔 영혼의 울림을 주는 작품과 마주칠 때가 있다. (…) 내게는 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와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가 그렇다.'(5페이지 '지은이의 말' 중에서).

첫 장을 넘기며 머뭇거려진다. 이 자(者)가 진정 우리가 알던 그 논객이 맞던가? 사회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기성사회에 비수를 날리던 진중권의 손끝에서 '영혼의 울림'같은 단어가 쓰여 진다는 건, 흡사 노년의 피천득 선생이 잉그리드 버그만 사진을 방에 걸어두고 얼굴을 붉혔다는 일화를 들었을 때 같은 묘한 느낌을 들게 한다. 입에서 칼이 날아갈듯, 냉소적인 그에게도 이런 감성적인 면이 있다니.

일련의 사회 이슈를 접하며 진중권은 가장 논쟁적인 지식인이 됐지만, 기실 그의 전공은 미학이고 그는 토론회나 강연회보다 책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말하자면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의 전문 영역의 결집체고, '영혼의 울림'을 느끼는 그의 감상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또한 당연한 것이다.

책의 부제인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처럼 신간은 기발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사고로 그의 영혼을 울린 그림을 12가지 테마로 소개한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가장 독창적인 관점으로 미학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그림과 화가가 살았던 당대의 지적(知的) 풍토, 그림을 마주한 자신의 내면을 담아낸다.

몸을 잃고 홀로 허공을 떠도는 머리(르네 마그리트의 '순례자'), 기괴한 형상 앞에서 책을 삼키는 사내(알브레히트 뒤러의 '책을 삼키는 요한'), 빛을 발하며 허공에 나타난 손이 왕궁의 벽에 새긴 글씨(렘브란트의 '벨사살의 연회'), 광인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수술(피터르 브뤼헐의 '우석의 제거') 등. 12개의 테마로 나뉜 이야기를 통해 그는 초현실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해석이 사라진 현대예술 등 미술사의 주요 흐름에 담겨진 의미들을 두루 섭렵한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소개하며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생각을 감상에 접목하고 네덜란드의 자화상과 풍속화를 감상할 때면 이탈리아, 프랑스와 동떨어진 네덜란드의 전통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들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통해 해석이 무너지는 20세기 예술사를 보여준다.

'미술사의 관통'과 '독창적인 그림 읽기'가 공존할 수 있는 건 예술 작품이 예술가의 손에서 태어난 하나의 독립된 '자아'이기 때문에 가능할 터다. 촘촘한 그림 읽기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아이'를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라는 주문이 아닐까.

'작품은 제작된 순간에 완성되는 죽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생물'이다. 이 물음과 답변의 연쇄가 끊어질 때 작품은 더 이상 살아 있기를 멈춘다.'(18쪽 프롤로그 '푼크툼으로서의 그림' 중에서)

법과 사회와 인권
안경환 지음/ 돌베개 펴냄/ 1마나 2000원

출판사 돌베개의 '석학인문강좌'시리즈 다섯 번째 책. 제 4대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법은 사외의 산물이고 그 사회의 공적 텍스트이며, 자율 규범인 윤리다 도덕과 달리 준수하지 않으면 공적 제제를 받는 강제규범'이라고 정의한다. 총 4장으로 나뉜 이 책은 고대 기록을 통해 법의 역사적 연원을 살피는 것을 비롯해, 현대 사회에서 법의 역할, 한국사회의 법제도, 인권 보장 문제 등 심도있는 논의를 펼친다.

우주전쟁 중의 첫사랑
서동욱 지음/ 민음사 펴냄/ 8000원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서동욱의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됐다. 첫 시집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을 펴낸 후 10년 만에 펴낸 신간에서 시인은 사랑과 종말이 뒤섞인 '우주 서사'를 통해 죽음과 사랑과 같은 진부한 개념을 신선하고 새로운 시어로 탈바꿈한다. B급 SF와 낭만적 사랑 이야기가 염세적 정서로 결합된 시집.

칸트사전
사케베 메구미 외 지음/ 도서출판 b펴냄/ 8만 원

'도서출판 b'의 현대철학사전 시리즈 Ⅰ권. 일본에서 158명의 칸트 연구자들에 의해 1997년 집필된 책을 완역해 출간한 것이다. 칸트 철학의 기본 개념들과 칸트 연구에서 핵심사항을 다루는 정리했고, 칸트 강의록 해설, 칸트 관계역사지도, 칸트 연보 등을 함께 실었다. 올해 초 Ⅱ권 '헤겔사전'이 먼저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