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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통해 유토피아를 바라보다

[책과 작가] 문단 뒷마당/ 한국 소설의 잔혹극들
백민석·백가흠·편혜영·김유진 등 특유의 스타일 보여줘
  • 1- 영화 '지옥의 묵시룩'
    2- '관 속의 드라큐라 (Dracula In A Coffin)'
이른 아침에 민방위 훈련을 다녀왔다. 1시간 교육은 허무하게도 실제 내용보다 민방위 대상인원들을 모으고 확인하는 작업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했다.

민방위 동대장은 민방위의 필요성이 '재난에 대한 대비'라고 말했는데 내 눈에는 그걸 듣고 있는 자들의 표정에 담긴 한없는 심드렁함과 지루함이 오히려 '재난'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긴장감이라곤 한점도 없는 사람들에게 재난이라는 단어는 전혀 공포로도 두려움으로도 환기되지 않고 있었다.

정작 두려운 것은 이미 주위에 다가온 공포에 대해 자신들이 그걸 공포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그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예를 들면 수위 조절을 못하면 한순간에 안락과 공포 사이를 종횡무진 떠돌게 되는 권력적 통제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현실이 무서워지면 굳이 다른 곳에서 공포를 찾을 이유가 없다. 반면 현실이 권태로우면 현실 이외의 세계를 원한다. 아마도 거기서 탄생하는 것들이 추리이고 SF고 환타지며 호러...같은 비일상적인 종류일 것이다.

한국 소설에서 '고어'한 장면은 그닥 많지 않다. 과거 백민석을 거쳐 백가흠, 편혜영, 김유진 등의 소설가 정도가 그런 풍경의 소유자들이다. 기괴, 그로테스크한 장면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은 소설가들이 포함되겠지만, 집요하게 자기 스타일로 잔혹한 풍경을 끌고 가고 있는 작가는 그 정도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 1- 백민석
    2- 백가흠
    3- 편혜영
    4- 김유진
끔찍한 혹은 무서운 얘기를 쓰는 작가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무서운 걸 싫어하는(다른 말로 겁이 많은) 내게는 개인적으로 퍽 다행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현실이 상상보다 더 무서운 세계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딱히 편한 심정만으로 관망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점도 있다.

어찌되었건 두려움과 공포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늘 일상에서 마주치기도 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는 대상과 형체가 불명확할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이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중)

원주민에게 가장 잔혹한, 상아 수집상이었던 커츠라는 인물은 죽으면서 '무섭다'는 말을 두 번 외친다. 베트남 전쟁으로 설정이 바뀌었지만, 이 장면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되어 유명해진다.

이렇듯 불길함, 불경함들을 포함한 공포는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큐라를 거쳐 포우로, 카프카로, 또 여러 갈래로 자리를 옮기면서 지금껏 단단한 문학적 소재가 되어져 왔다. 그러니 문화적 상황이 다를 뿐, 한국 소설에서 잔혹극들이 탄생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타인의 글쓰기를 몇몇 스타일로 묶어서 한꺼번에 판단하는 일은 옳지 않은 방법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한국 소설에서 드문 장면인 잔혹 성향에 대해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타인의 취향에 맞춰 글을 쓰는 것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글을 쓰는 게 솔직하고 옳지 않은가?라는 물음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취향이 소수취향이고 불편한 취향일 수 있겠지만, 취향이 없는(혹은 타인의 취향이 자신의 취향인) 작가에 비해 분명 훌륭한 것이고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술적 의식을 거행하더라도 바람직한 결과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과 똑같이, 터부를 위반하더라도 두려운 결과가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터부를 어길 때마다 반드시 정해진 해악이 따른다면, 그것은 터부가 아니라 도덕이나 상식적인 계율일 것이다.' (프레이져, 『황금가지』 중)

당연한 얘기지만, 그러니까 그들은 실제 '일어나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세상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고, 도덕이나 상식적인 계율을 따르느니 차라리 터부를 위반하겠다는 투쟁을 꿈꾸는 모험가들인 것이다.

유토피아로서의 공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공포를 통해서 유토피아를 바라볼 수는 있다. 후자일 때 그것은 반성과 점검에까지 영역을 넓힌다. 공포를 바라보며 몸서리쳐하는 것과, 끔찍하게 바라본 그게 또 우리 자신일 수도 있어서 더욱 그렇다.

너무나 나태하여 오히려 섬뜩하기까지 했던 오늘 초등학교 운동장을 메운 민방위 훈련의 '아저씨'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식으로 자기를 되돌아보는 방법인 것인지도 모른다. 납량특집의 계절 따위는 이미 멀리 지나가버린 쌀쌀해져가는 이 가을을 목전에 두고 느닷없이 호러를 얘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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