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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은 왜 영화판에 뛰어들까

[문단 뒷마당] 문학과 영화가 만나 파생되는 '다른 감성의 문학'을 기대
  • 홍상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출연한 소설가 김연수(왼쪽에서 두번째)
예전에 유하 시인이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자신의 시집제목과 같다)로 영화감독 데뷔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그때 난 습작시를 쓰던 문청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를 좋아하던 나는 그의 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장석남 시인이 <성철>이라는 영화에 캐스팅되어 삭발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더욱 깜작 놀랐었다. 이때가 대략 1997년경이었다고 기억되는데, 그때 난 등단 3년차의 애송이 시인이었다. 그리고 시인이 감독도 아닌 배우 '노릇'을 한다는 것에 설명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1997년 이창동 소설가가 <초록 물고기>를 만들었을 때도 나는 그 영화를 '소설가 감독'의 영화로 본 것이 아니라 큰 의미부여 없이 그저 영화로서 즐겼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나는 뭔가를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고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얼마 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김연수 소설가가 배우로 나왔을 때, 문학에 대한 나의 고지식하던 보수관은 '아니 이럴 수가'에서 '뭐 그럴 수 있겠거니'로 바뀌어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1-영화 '쌍화점'의 유하 감독 2-소설가 하성란 3-소설가 김영하 4-소설가 이청준과 영화 감독 이창동 5-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단편영화감독 이응준
지금껏 문인과 영화가('문학작품'과 영화가 아니다.) 만나온 예는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몇몇 예들은 있다.

김재수 감독의 2001년 영화 <클럽 버터플라이>에는 하성란 소설가가 등장하며, 2006년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는 김영하 소설가가 까메오로 출연했고, 홍상수 감독 단편영화 <첩첩산중>에 은희경 소설가가 역시 까메오로 출연했다. 그리고 이응준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직접 영화감독을 맡아 찍고 있다. 진수미 시인, 김경주 시인처럼 소위 인디영화, 독립영화를 찍었거나 찍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이밖에도 내가 접하지 못한 예는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알고 있는 바처럼, 많은 문학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문학과 영화가 똑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문인들이 왜 영화판에 뛰어들고 있는 걸까? 관객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작업 결과물로서의 영화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 뭔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는 걸까?

'사회 심리학은 우리가 공적인 삶 속에서 온통 "가면을 쓰고 있으며",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흐려놓는 정체성들을 채택하고 있다는 모티프를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 있다. 때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빈번하게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라고 가정하는 것에서보다 가면에 더 많은 진리가 있는 것이다. (...) "게임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의 진정한 자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에 관한 진리가 허구를 가장하여 표명되는 것이다.' (지젝, <이라크 - 빌려온 항아리>중)

지젝의 위의 글에서 '사회심리학'을 '영화'로 혹은 '문학'으로 바꿔 읽어보면 그에 대한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라고 가정하는 것에서보다 가면에 더 많은 진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문학과 영화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 결국 표현의 문제이고, 소극적 형태의 표현(글쓰기)에서 특정한 적극적 형태의 표현(영화)으로의 움직임인 것이다.

'문화여, 트랜스하라!' 이런 말들이 요즘의 대세라지만, 사실 모든 장르는 장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이 개인의 고립성에서부터 출발하는 예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욱이 개인적 창조물을 만들던 문인들이 영화라는 집단의 창조물에 뛰어드는 것은. 작가 자신의 견해가 글로 표현될 때만큼 직접적이지도, 크지도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이 해당 예술인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종(種)의 다양성은 그런 혼종에서 생기는 것이고, 문명은 언제나 그렇듯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혹은 퀄트의 방식으로 세상을 알록달록 수놓으며 진행되어 왔으니 말이다.

기실 지금까지 문학과 영화의 결합은 영화가 주가 되어 문학의 내러티브만 가져오는 단순한 방식을 취해왔었다. 하지만 문학을 스토리뱅크 같은 데서 찾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서사)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감성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가 '다른 감성의 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감독의 '문학적 감성'에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문인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무엇이기도 하다.

'문제작은 영화학교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영화업계의 말을 빌려본다면, 문인들이 만드는 영화는 기존 문법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가능성을 크게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읽는 것과 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를 갖기 때문에, 소설에서 영화를, 영화에서 소설을 기대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오히려 그 둘이 만나 파생되는 제3의 무엇을 기대해야 옳을 것이다. 위에 말한 '다른 감성의 문학' 같은 것으로서 말이다.

그것의 구체적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는 영화적 지식에 과문한 내가 규명할 일은 아니지만, 영화와의 동거를 꿈꾸는 그들이 영상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기를 바라며, 혹은 경계를 지우는 이러한 일들이 그들 문학의 확장버전이 되기를 바라며, 행복한 작업과 결과들로 탄생되기를 바란다.

물론 주변의 친한 문인이 영화를 만들겠다거나 배우를 할 생각이라면 나는 정녕 '도시락을 싸들고' 말리겠다. '하던 거나 잘 하세요'라고 면박을 줄 수도 있겠다.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놀란 마음으로부터 지금까지, 문인과 영화의 관계가 이렇듯 내게 아직 낯선 것으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모든 경계는 트랜스하고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그들의 문학적 상상력이 영사필름 위에 담겨 더 좋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문학적' 컷을 영화관에서 목도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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