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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외국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문단 뒷마당] 언어의 경계를 넘어 모국어를 재발견하기 위한 작업
  • 왼쪽부터 소설가 박상륭, 배수아, 시인 허수경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이곳이 아니라 항상 저 너머에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을 이곳에서 떠나 여행하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모든 여행은 내가 있던 이곳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것이 식생의 차이든 문화의 차이든 여행길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결국 내 안의 무엇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여행과 열애는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들떠있는 것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대지를 자신이 알고 있던 대지와는 다른 것으로 무엇으로 채우는 낯섦과 흥분과 곤고함이 있다.

기한이 있는 짧은 여행도 있을 것이고, 기한이 없는 (이민 같은 것까지를 포함하여) 긴 여행도 있을 것이지만, 무릇 여행은 자신이 원래 있었던 자리에서 멀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잠깐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 오는 일이나, 산책을 갔다 오는 일도 분명 여행의 한 갈래라고 나는 믿는다.

여행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여행이 어떤 문학적 변화와 영향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해, 여행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혹은 체질적으로 여행에 익숙해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 보면, 많은 문인들이 자신의 여행경험을 자신의 문학적, 정신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처럼 보인다. 하긴 반드시 배낭을 꾸리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일조차 여행이라고 부르는 작가를 본 일도 있긴 하니까 말이다.

문인들이 쓴 여행기들이 출간되어 나오는 경우는 이루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아주 많다. 문인들이 쓴 여행기만을 찾아 읽는 사람은 아마 드물겠지만, 그것이 여행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모든 독자는 사실 알게 모르게 작가의 여행경험에 일정 부분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면 당신이 쓸 수 있는 글은 단 두 가지, 여행기와 '여행길에서 쓴 글'일 것이기 때문이다.

  • 왼쪽부터 김영하, 김연수
'여행길에서 쓴 글'은 여행기와는 다르다. 거기에는 풍경과 문화의 차용만 있을 수도 있고, 여행 자체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는 취재의 방식이 될 것이고 후자는 정신적 감흥의 방식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제도 및 대상과 분리될 수 없다. 만일 신성함의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사회 제도가 진정 폐쇄되고 유일한 무엇을 구축한다면, 축제나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그곳에 참석하기 몇 시간 전 숲 속에서 사냥하거나 차를 운전하던 그때의 자기와는 무언가 다른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과 동일할 수 없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시켜주는, 인간만의 존재방식은 '변화'에 있다.' (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중)

그렇게 이곳과는 다른 저 너머를 통해 알게 모르게 작가들은 자신에게 온 '변화'를 글에 담고 독자는 그걸 읽는다.

흔히 재외(在外)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소외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곳'에 대한 집착에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문학적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됨을, 우리는 한국 문학의 몇몇 풍경을 통해 이미 접한 바 있다.

박상륭의 소설과 캐나다가 그렇고, 배수아의 소설과 독일이 그러하며, 또한 허수경의 시와 독일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김영하 소설가의 '검은 꽃'이 보여준 남미와, 김연수 소설가의 '밤은 노래한다'에서 보여준 연변, 서진 소설가의 뉴욕, 박형서 소설가의 동남아 등이 그러하다. 또한 해이수의 여행적 글쓰기 등등 그 예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문단은 자신의 여행 체험이 낳은 글쓰기로 그 넓이와 깊이 두 측면 모두에서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중이다.

작가가 외국에 나가 글을 쓰는 일이 흔치 않았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국가나 기업에서 그런 일을 지원하기도 하고(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 여행과 취재를 겸하거나 혹은 또 다른 작업공간을 찾아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국외로 나가는 일들이 격세지감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이미 외국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한국소설들도 등장한 지 오래다. '세계화'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좋든 싫든, 어쨌든 한국문학이 그 시각을 한국 밖으로 돌리고 있음은 분명한 행보인 듯하다.

자국 중심의 오랜 고집은 사실 우리 문화전반에서 그래왔던 것이지만, 과거 70~80년대의 문학 풍경처럼 '민족'이라는 단어가 큰 가치와 힘을 가지고 있었을 당시에는, 타 문화가 끼어들 자리가 솔직히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무엇이라는 정서 역시 강했다.

'나는 어제 로베레토에 도착했다. 이곳은 언어가 바뀌는 경계선이다. 여기까지 오는 북쪽 지역에서는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줄곧 혼용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처음으로 토박이 이탈리아 마부를 만나게 되었다. 술집 주인도 독일어를 전혀 못하니, 이제 내 언어적 재능을 시험해봐야 한다. 좋아하는 언어가 생생히 살아나서 이제부터 사용어가 되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괴테, 『이탈리아 기행』중)

해외로 가는 일은 언어가 바뀌는 경계를 넘는 일이다. 추측컨대,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권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에게 모국어는 모국에서보다 더욱 절실한 언어가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외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 감정이고 때문에 역설적으로 외국에서 글을 쓰는 일은 자기 자신의 언어, 즉 모국어를 재발견하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그러니 작가들이 외국에서 글을 쓰는 일은 여흥도, 유휴도 아니고 겉 폼 잡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떠나 글을 쓰는 곳은 타지(他地)가 아니라 자신의 내지(內地)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공간인 것이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작가는 모국어라는 또 다른 모국에 깃들어 있는 것이니, 그곳이 어디인들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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