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간다. 따뜻한 남쪽을 향하면 마을마다 감나무마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 감나무 그 따뜻한 주홍빛만 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을엔 감나무가 있지만 산에 고욤나무가 커간다. 고욤나무는 말하자면 애기감나무이며 야생의 감나무이다. 고욤나무의 열매 고염도 이 늦은 가을 갈 빛으로 익어간다.

고욤나무는 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큰키 나무이다. 손바닥만한 잎들은 서로 어긋나게 달린다. 때론 크고 때론 작아 잎에 변이가 있다. 감나무처럼 유난히 두껍고 반질거리지도 않는다. 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은 비슷하다.

꽃은 6월에 피는데 감꽃과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내 눈에 좀 더 곱다. 암나무와 숫나무가 서로 딴그루인데 암나무의 암꽃은 연노란빛 감꽃과 비슷한데 조금 작고 수줍은 듯 분홍빛도 돌아 곱디 곱다. 숫나무는 항아리처럼 생겼다. 수꽃도 연노란색이지만 끝엔 역시 다소 진한 붉은 빛이 돌기도 한다. 이제 익어가는 열매는 감과 모양은 같지만 크기는 1.5cm정도로 작다. 노랗게 익기 시작하여 점점 진해져 흙갈색이 되어 간다.

고욤나무는 깊은 숲 속이 아니라 볕이 미치는 숲 가장자리나 길 옆에서, 마을 근처의 야산에서 주로 본다. 감나무보다 좋은 점은 추위에 강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전에 고욤나무의 중요한 쓰임새는 바로 감나무 대목이었다. 감나무란 감을 먹으려고 다양한 맛과 모양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손을 댄 품종들이다. 그래서 씨앗이 떨어지면 본래 감나무가 가지는 장점들을 잃기가 쉬워 가지를 잘라 접붙이기를 해서 키우는 것이 보통인데. 이때 대목으로 쓰이는 것이 바로 고욤나무이다. 이리하면 나무 자체도 강건하게 잘 크는 장점도 있다. 이런 용도로 너무 많이 이용했기 때문일까? 사실 산에서 고욤나무를 만나는 일이 그리 흔치는 않다.

고욤나무 열매 고욤은 먹을 수 있을까? 먹을 수 있긴 한데 탄닌이 많아 아주 떫은 맛이 나므로 햇볕에 말렸다가 혹은 따로 저장하였다가 식용 혹은 약용으로 쓴다. 한방에서 사용하는 생약명은 군천자(君遷子)이다. 갈증과 열을 없애 주고 몸을 윤택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지나치면 안 된다는 주의가 따른다.

특히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강해 신경통이나 냉병 등에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금기도 있다. 그밖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감꼭지처럼 고욤꼭지도 딸꾹질을 멈추는 효과도 있다. 잎도 쓰이는데 오랫동안 다려 마시면 혈압도 조절해주고 불면증이나 두통 등 여러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도 있다. 요즈음 현대의학에서는 잎에서 항산화 성분과 항암 성분이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목재로도 이용한다. 제법 굵게 자라기도 하지만 고욤나무 집안이 바로 속이 검은 감나무류이니 빛깔이나 강도 때문에 고급 가구재가 된다.

고욤나무는 고염나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양나무라고도 하며 작은 감나무란 뜻으로 소시(小枾)라고도 한다. 귀여운 작은 감 고욤나무 익어가는 가을은 그렇게 깊어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