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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공통점 공유한 신선한 만남"

[책과 작가]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글래저
'연희문학 창작촌' 첫 해외 입주 작가로 방한 낭독무대 가져
  • 안드레아스 글래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때, 장벽을 넘어 제 고향 동독으로 들어간 동베를린 작가가 있다. 꼭 20년 후, 그는 독일 통일 20주년이던 지난 9일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이 아닌 땅을 밟았다.

독일 출신의 작가 안드레아스 글래저(Andreas Gläser)가 서울 문학전문 레지던시 '연희문학 창작촌'의 첫 해외 입주 작가로 한국을 찾았다.

동베를린 출신의 작가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베를린식 레제뷔네(lesebuhnen:낭독무대)를 가졌다.

통일 이전에도 예술인 간 교류는 있어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해요. 처음에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거리에 많아 놀랐는데, 신종플루 때문이라더군요. 대도시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할 수 있는데 놀랐습니다. 음식도 마음에 들고, 낭독무대를 하는 이곳도 베를린 무대와 비슷해 편안하고요."

9일 한국을 찾은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1965년 동베를린의 장벽 부근 프렌츠라우어 베르크 출생인 작가는 1997년까지 토목기사로 일했던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소설가다.

축구 '관람'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그는 축구팬 잡지에 가명의 기고자로 글을 쓰면서 알려지게 됐는데, 90년대 후반부터 그의 본명인 안드레아스 글래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2년 55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장벽이 세워진 책임은 BFC에 있다>(BFC: 독일의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이름)를 발표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는 구 동독과 통일 이후의 유산에 대해 프롤레타리아적인 시각에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써낸다.

"베를린에 연희문학촌과 비슷한 레지던스가 있다. 1947년부터 운영되었는데, 6명의 작가가 머물며 창작을 합니다. 제가 베를린 레지던스를 직접 이용해 보지 않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연희문학촌은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도심 속에 있지만, 숲이 울창해 창작에 집중할 수 있고요."

그가 처음 서독 땅을 밟은 것은 독일 통일 전인 1989년 7월. 여러 건설현장을 옮겨 다니던 그는 3년간 출국 신청 끝에 서베를린 여행 허가증을 얻으면서 통일 두 달 전 국경선을 넘을 수 있었다. 통일이 되었을 때는 역으로 부모를 찾아 동독을 다시 방문했다고.

"그 당시에도 독일은 예술가, 작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어요. 일반인과 달리 암암리에 전화까지 가능할 정도로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는 "동독출신 작가로서 통일 후 출판사와 접촉 기회가 많아졌고, 개인적으로 생활에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독일의 대부분 작가들은 작가로 활동하는 데 있어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물론 "통일을 주제로 다루는 작가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작가 스스로 '조국 통일'이 작품세계에 많은 변화를 준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기실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건 통일 전후의 개인적 체험이다.

작가는 직설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자신이 본 것을 전달하는데, 그가 사용하는 베를린 사람 특유의 냉철한 일상 언어는 '프롤렌타리아적인 산문'으로 하나의 문학어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등 짧은 산문을 모은 글과 <동네 싸움꾼>, <모두 다 천국으로> 등 오디오 북이 출간됐는데, 이들 작품에는 서베를린 방문, 서독의 새로운 건물들의 건축학적 경이로움, 호엔쇤하우젠 비밀 경찰 감옥, 출국 허가 신청, 히틀러와 스탈린 등 통일 전후 동독 출신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다. 내년에는 첫 장편 <베를린 난동>이 출간될 예정이다.

유럽의 독서문화, 레제뷔네

그는 주기적으로 낭독무대를 갖는 베를린 독서 모임 '열광자의 거리' 설립 멤버로 독일 독자에게 이름을 알렸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6명의 작가 모임으로 10년 전 베를린에서 시작되었다.

낭독무대란 중세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럽의 전통적인 문학 발표행사의 이름이다. 서점, 술집 등에서 작가나 시인이 낭송, 퍼포먼스,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문학을 소개하는 무대를 말한다.

유료로 운영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데, 가격은 독일의 경우 영화 값의 절반 정도다. 귄터 그라스, 조앤 K.롤링과 같은 유명 작가의 낭독 무대는 실황으로 소개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수요일 홍대 카페 '디디 다'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 7개를 낭독하고, 독자와 대화 시간을 가졌다. 단편 <동네싸움꾼>의 일부분을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읽었는데 어설픈 한국어 낭독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신다고 아는데, 낭독하신 작품 속 그 야한 장면도 경험에서 쓰신 건가요?"

"성적 농담이요? 제가 야한 걸 좋아한다기보다 인생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일을 유머러스하게 쓴 거죠."

"동독 출신 작가로 서독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통일 전 서독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지내다 보니 그게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경제 시스템은 인상적이었죠. 동독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아주 속도감 있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문화적 이질감에 대한 충격은 없었어요."

작품 낭독과 질문 응답, 트럼펫 연주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공연은 양국의 경계를 넘어 작가와 독자 사이를 한 층 좁혀주었다.

"분단을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독일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문이 더 의미 있기도 하고요. 분단의 겪었던 작가와 분단을 겪고 있는 한국의 독자와의 만남이 저도 신선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 다시 이런 경험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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