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한 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느껴지는 완벽한 과학소설

2004년 11월 17일 로이터통신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북구 유럽의 낭만적인 시인들이 무선방송으로 시를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렸다. 시인들은 지난 수요일 직녀성이라고 불리는 항성 베가를 향해 시를 날려 보냈다. 그런데 26광년 떨어진 그곳 독자들에게 시가 도달하려면 205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사를 읽던 나는 지구에서 쏘아올린 시가 우주의 어둠을 헤치며 50년 동안 천천히 베가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다소 의문스러웠던 점은 무선방송으로 쏘아 올려진 시가 항성 베가에 도착했을 때 그곳 독자들(?)은 과연 시를 읽을 수 있을까, 외계인들의 선전포고로 읽히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닌 우주의 먼지나 폐기물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였다.

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는 햅타포드라 불리는 외계생명체가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다. 그래서 햅타포드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방문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즈가 파견된다.

테드 창
소설은 햅타포드의 이야기와 루이즈의 죽은 딸에 대한 회상이 교차된다. 루이즈는 헵타포드의 발성구조와 문자체계가 지구인들의 것과 너무나 달라 애를 먹지만 페르마의 원리를 통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빛이 공기를 지나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있다. 빛은 수면에 도달할 때까지는 일직선으로 나아가지만 물은 공기와는 다른 굴절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 속에서는 방향을 바꾼다.

광선이 취하는 경로는 언제나 최소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이고 이것을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현상에 대해서 굴절률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꾸었다고 설명한다면,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빛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햅타포드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해석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우리 인생에 어떤 경로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모르면서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햅타포드는 시작점과 도달 지점을 미리 알고 있다. 루이즈는 죽은 자신의 딸의 이야기를 역순으로 들려준다.

스물다섯 살 딸의 에피소드에서부터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그녀가 딸을 임신하게 되는 그 밤까지. 딸이 죽고 나서야 루이즈는 햅타포드의 동시적 사유와 인식체계에 서서히 동화되고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인 동시에 내 인생의 이야기이며 우리들 인생의 이야기이다.

8편의 중단편으로 묶여진 이 소설집은 사실 벅찰 정도의 방대한 지식이 담겨있다. 수학, 물리학, 철학, 언어학까지. 하지만 이 책에 매료된 이유는 스위스시계처럼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완벽한 과학소설이 내게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체계와 햅타포드의 인식체계가 완전히 상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종목적지는 같은 것처럼. 2004년 북유럽 시인들이 보낸 편지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우주의 어둠 속을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더 빠른 경로를 선택했을까.



강성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