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굴피나무

잎도 져버린 계절, 나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낙우송의 깊은 단풍 정도가 마음을 끌까. 낙엽 지는 나무임에도 솔방울 같은 열매가 달려 있어 보게 되는 나무가 굴피나무이다. 굴피나무라고 하니 "아하! 굴피집 짓는 나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산간지방에서 지붕을 껍질로 얹어 굴피집을 만드는 나무는 굴피나무가 아니고 굴참나무이다. 여기서는 굴피나무의 껍질이란 의미가 된다.

그럼 진짜 굴피나무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중부 이남에서 볼 수 있는데 깊고 우거진 숲에서 는 보기 어렵다. 무엇인가 조금은 건조하고 메마른 들판이나 산기슭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나무가 제대로 자라려면 햇살이 들어야 하니 숲이 우거지면 곤란하다. 분포로 보면 내륙에도 있지만 만나기 쉬운 것은 주로 바닷가이다. 바다가 보이는 서해의 나지막한 야산 근처를 눈여겨보는 것이 이 나무를 만날 확률이 가장 높다.

식물들은 모두 비옥한 환경이 가장 좋을 듯 하지만, 굴피나무처럼 좋든 싫든 자기의 처지에 적합하게 적응하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식물이 살아가는 것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나 모두 같은 이치인 듯 싶다.

굴피나무는 가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큰키나무이다. 하지만 산과 들에서 만날 때에는 아주 크게 자라 숲을 이루는 나무들을 보기는 어렵고 대부분 숲 가장자리에 10m 넘지 않게 크는 것이 보통이다. 잎은 아까시나무처럼 여러 개의 작은 잎들이 모여 달리지만 각각의 작은 잎은 길쭉한 타원형인데다가 끝이 아주 길고 뾰족하게 빠져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작은 잎은 적게는 7개에서 많게는 19개까지도 달린다. 물론 꽃도 핀다. 늦은 봄이면 한 나무에 수꽃과 암꽃이 함께 달리는데 화려한 꽃잎은 없어서 꽃으로 이 나무를 인식하는 이는 많지 않다. 녹황색으로 덜 익은 솔방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암꽃이고, 여러 갈래로 길게 꽃차례를 만들며 달리는 것이 수꽃차례이다. 열매가 되어 익고 나면 벌어지는 조각 조각이 뾰족하다.

굴태나무, 꾸정나무, 산가죽나무, 굴황피나무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화향수, 화과수라는 한자 이름도 있다.

알고 보면 별칭만큼 쓰임새도 다양하다. 수피를 줄 대용으로 쓰기도 했는데 물에 잘 젖지 않아 어망을 만드는 데 썼다고 하고, 열매는 황색염료로 이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방에서는 상처나 염증을 치료하고 근육통이나 치통 같은 통증치료에도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달여 마시기보다는 액이나 분말로 발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목재도 굵게 키우지 않으니 특별한 용도보다는 성냥개비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굴피나무의 특별한 진갈색 열매는 지금부터 겨우내 볼 수 있다. 때론 새봄이 되어 새 꽃이 필 때까지도. 그렇기에 쓸쓸한 겨울친구로 굴피나무는 나쁘지 않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