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비목

날씨가 더 없이 스산하다. 기온도 뚝뚝 내려가고 찬 바람결이 언듯언듯 몸과 마음에 닿아 쓸쓸함을 더한다. 풍성했던 나뭇가지의 잎들은 이제 마르고 떨어져 숲 속이 휑하니 들여다 보인다. 차라리 흰눈이 가득한 한 겨울이 포근할 듯도 하다. 정붙이기 어려운 날씨이다. 이 즈음에 어떤 풀이나 나무가 적합할까 이러저리 생각하다. '비목'이 떠올랐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비목"때문인 것 같다. 사실 오늘 이야기하는 비목과 노래 속의 비목은 서로 다른 것인데 본질이 달라도 이름이 같아 생기는 오해는 극복하기 어려운 듯하다. 노래 속의 비목(碑木)은 나무로 만든 비석을 말한다. 6.25전쟁 때 녹이 슨 철모와 함께 있던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보고 만들어졌다는 가사이고 보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망한 느낌일까 싶다.

비목이란 이름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 나오는 눈이 하나밖에 없어 두 마리가 함께 다녀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설상의 물고기 비목(比目)도 있다. 혼자여서 완전할 수 없으니 외롭고 애잔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나무 비목은 이렇게 쓸쓸하지 않다. 특히 이즈음 비목은 잎은 떨어졌지만 빨갛고 동그란 열매가 모여 달려 보기도 좋다. 더욱이 이 열매는 윤기로 반질거려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일년 중 열매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즈음이 가장 제대로 비목을 만날 수 있는 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비목은 녹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큰키 나무이다. 잘 크면 15m까지 자라고 줄기도 한아름 되도록 큰다고는 하는데 숲에서 만나 그리 큰 나무들을 본 기억은 없다.

우선 봄이면 잎보다 먼저 다소 연한 노란 꽃이 핀다. 햇가지 아래 잎 겨드랑이에서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짧은 자루를 우산살처럼 모여 달고 꽃이 달린다. 이때 비목은 여리고 싱그럽다. 이내 돋아나는 잎은 어긋나는데 길쭉한 잎에 3출맥과 깃털 같은 잎맥이 섞여 발달하여 비목은 잎만 보고도 금세 구별할 수 있다.

잎은 다소 두텁고 반질거려, 게다가 녹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여서 상록성일 것 같은 착각을 하는데 낙엽이 진다. 낙엽지기 전 단풍빛은 노란빛에서 붉은 빛이 섞인 밝은 갈색이 주를 이룬다. 가을에 익는 그리고 오래도록 달려있는 열매는 3개에서 많게는 10개씩 달린다. 크게 자란 나무는 수피도 눈에 들어오는데 황백색으로 다른 나무보다 다소 밝은 수피는 작은 조작 조각 나뉘어 떨어진다.

비목은 지방에 따라 보얀목이라고도 하고 윤여리나무라고도 한다. 이웃하는 나라에도 다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북쪽으로는 황해도 남쪽으로는 거문도에 까지 자란다. 하지만 중부지방 숲에서는 잘 만나지지 않고 남쪽으로 찾아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다.

중요한 쓰임새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목재의 재질이 치밀하고 갈라지지 않아 기구재나 조각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관상적으로는 크게 화려하진 않아도 꽃, 잎. 열매와 가을 낙엽도 볼 수 있어 고려해 볼 만하다.

묘비명을 쓴 비목도, 외눈박이 비목도 아니라면 왜 비목이 되었을까? 어떤 이는 이 겨울 붉은 열매의 아름다움이 워낙 빼어나 비목(緋木; 짙게 붉을 비, 비단 비)이 아닐까 한다.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심정적인 동감을 하며 겨울 비목을 다시 만나련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