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뉴욕 최고급 식당 주말 피크타임 함게 겪는 듯한 생생한 묘사

도올의 '개비, 비개비'론에서 끄집어내자면, 작가는 요리 바닥에서는 전형적인 비개비였다. 소년 시절부터 성장하는 요리사와는 달리, 그는 나이 지긋해서 배가 나올 나이에 요리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권위 있는 잡지 <뉴요커>에서 문학담당으로 수많은 거물 작가들을 발굴한, 시쳇말로 날리던 기자였던 빌 버포드는 그렇게 뜻밖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낯간지러운 <체험! 삶의 현장> 따위가 아니라 '하루 열여섯 시간씩, 그것도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대충 지려가면서' 겪은 주방 생활의 총천연색 체험기다. 비개비의 새로운 직업 탐구치고는 화끈하게 겪은 셈이다.

그는 뉴욕 식당계의 전설적인 인물-물론 미슐랭 쓰리스타인-마리오 바탈리의 식당에 견습으로 들어간다. 취재가 아닌 인생을 바꾸려는 열망이 그를 푹푹 찌는 파스타솥에 밀어넣었다. 제대로 된 요리사도 아닌 재료 다듬는 보조역으로 시작한 그의 요리 인생은 마침내 그릴 담당으로까지 승진한다.

비개비나 기자 출신이라는 어떤 인센티브도 없이 그는 '테스토스테론이 뿜어져 나오는 짐승 우리 같은' 주방의 진짜 요리사 대우를 받는다. 물론 훈장처럼 베어버린 칼자국과 오븐에 지진 화상 자국을 얻는 상처뿐인 영광이지만.

그의 묘사력은 굉장하다. 마치 독자들이 뉴욕 최고급 식당의 주방 안에서 주말 피크타임을 함께 겪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한 병에 백만원짜리 와인이 따라지고, 최고급 코스 요리가 뜨거운 김을 뿜으며 손님상에 올라가는 과정을 화끈하게 중계한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듯하지만, 기술과 열정 하나는 최고인 요리사 집단의 묘사는 마치 뉴욕 요리 동네판 수호지를 보는 것 같다.

그의 요리 역정은 미국땅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이 아닌 '본토'의 요리를 향해 전진한다. 키안티 와인이 나오는 고장 토스카나에서 최고의 푸주한 다리오 체키니를 만나 이탈리아 요리의 원형질이 어떻게 제련되는지 확인한다.

<앗 뜨거워>는 비개비로 요리 바닥에서 밥 벌어먹는 내게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나눌 기회를 주었던 책이기도 하다. 나 역시 서른다섯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식당 주방에 던져졌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2년전 이탈리아 출장길에 읽었는데, 두툼한 하드커버의 만만찮은 분량이 쉽게 읽혀졌다. 굳이 요리사가 아니어도 인생 이모작을 꿈꾸거나, 서양 주방의 내밀한 모습-그렇다고 이 바닥의 고전 <키친 컨피덴셜>처럼 화끈한 주방 섹스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을 구경하고픈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더구나 까다로운 이탈리아 요리 용어가 잘 삶은 '알 덴테' 스파게티처럼 탱탱하게 잘 번역되어서 빛을 더한다.

최근 케이블에서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던 '철인 요리왕'에 책의 주인공인 마리오 바탈리가 등장한다. 작가의 묘사가 얼마나 생생했던지 나는 그가 구면인 줄 착각했던 웃긴 일화도 있다.



박찬일 푸드칼럼니스트, 누이누이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