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신간 '너는 모른다' 소설가 정이현화교 이야기 통해 우리의 삶 되돌아봐

문학계에서 하나의 담론이 형성되면 그 안에 포섭된 개체들은 개성을 잃는다.

담론으로 묶인 개체는 대중성을 획득하지만, 각각의 개별성이 거세되며 그 틀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한계가 따른다. 80년대 민중문학이 그랬고, 90년대 여성주의 소설이 그랬으며, 2000년대 미래파로 묶인 시인들의 노래가 그랬다.

소설가 정이현 역시 이 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터다. 40만부가 팔린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는 작가 정이현을 일반에 알린 작품이지만, 이와 함께 그가 써낸 거의 모든 소설에 '통통 튀는 문체에 강남 중산층 여성을 그린'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작품이 드라마, 뮤지컬로 만들어지며 소설은 이미지만 남았다.

때문에 거칠게 그녀는 칙릿 작가로 분류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삼풍백화점>, <오늘의 거짓말>같은 작품에 실린 작가의 진정성은 이 담론의 장에 가려졌다.

쿨함은 자기 방어가 아닐까

2002년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데뷔한 그녀는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문장, 산뜻한 구성, 속도감 있는 전개로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전쟁과 기아 같은 이전 세대의 상처가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는 '서울 출신' 혹은 중산층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이 경험의 차이는 젊은 소설가들이 그리는 인간의 이야기가 세계보다는 개인에 머물러 있다는 세간의 평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정이현의 소설은 젊은 세대의 보편적 경험이 일종의 차별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자전적 경험을 풀어 쓴 <삼풍백화점>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았는데, 이 상처가 빚어낸 문학이란 또한 9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그들만이 써낼 수 있는 것일 터다. 그는 "일상을 루틴하게 살아가는 것, 보편적인 경험이 소설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점은 개별 작가들의 변화는 전혀 읽어주지 않는 거죠. 저는 저널이나 평론이 독자와 작가를 연결해 주는 다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널이 작가를 명명하는 순간 독자는 틀을 지우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연봉 2천만 원의 대졸 직장 여성부터 영악한 강남 여자까지, 정이현이 그리는 우리 시대 젊음은 대부분 쿨하거나 혹은 쿨한 척하는 젊음인데, 이 면모는 기실 타인에게 상처받기 싫어하는 일종의 수동적 자기 방어다. 복잡다단한 2000년대 젊음을 그리며 그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이 시대의 고독, 소통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나와 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지 않아요. 타인과 손을 마주잡지 않는다고 해도 손끝이 닿는 느낌을 기억한다면,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너는 모른다

신간 <너는 모른다>는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인물과 화법과 서사 방식을 변화무쌍하게 바꾸는 노련한 작가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다시, 영원히 합일할 수 없는 타인과의 소통 의지다.

"작가의 대전제가 어떻게 변하겠어요.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거지. 다루는 방법과 소재, 기법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보지만요. 더 숙련이 되어가는 거겠죠."

2008년 5월 일요일, 강 위에 시체 한 구가 떠오른다. 죽어서도 구천을 떠도는 이 슬픈 영혼이 발견되는 순간, 누군가는 늦잠을 자고 누군가는 사랑을 속삭이며 누군가는 축구공을 찬다.

페이드 아웃(fade-out). 카메라는 세 달 전 서초구 방배동 한 빌라를 비춘다. 김상호와 진옥영 부부, 바이올린 영재인 열한 살 딸 유지, 김상호와 전처 사이에 낳은 아들 혜성. 평범한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타인들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각자의 삶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유지가 실종되며 이 가족의 삶은 뒤틀린다.

플래시 오버(flash over). 김상호는 중국 장기 밀매 브로커로 돈을 모았고 화교 출신 진옥영은 10년 간 옛 애인과 밀회를 즐겨왔다. 혜성은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 엇갈린 타인들이 사라진 딸 유지의 행방을 뒤쫓는 이야기가 작품의 줄거리.

작가는 화교와 장기 밀매 같은 소재를 작품 구상하는 지난 2년간 틈틈이 취재했다.

"소설의 원점은 화교 얘기였어요. 화교는 두 부류더라고요. 하나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 또 한 부류는 자신의 태생을 감수하며 떠돌아다니는 사람. 옥영과 밍(옥영의 옛 애인)으로 대표되는 이 두 부류의 화교가 결정적인 사건 앞에서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시작이었어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은 인물 각자가 가진 고독감과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과정에 방점이 찍힌다. 작가는 3인칭 카메라가 집안을 비추며 각자의 삶을 그려내는 듯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저는 화법에 관심이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면서 객관적으로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홍상수 영화를 보면 인물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관객들이 그 장면을 심드렁하게 보다가 어느 순간 섬뜩하게 '그렇다면 나는?'이라고 되묻게 되는 것처럼."

작가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책은 각각의 독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보르헤스의 말과 비슷한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작품은 가족, 추리소설 기법, 강남 중산층 가정 등 작품 이면의 보여준 것 이외에도 수많은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지난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연재된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엮이며 에필로그를 추가했다.

"한국사회에 어떻게 소년이 아저씨가 되는가를 그리고 싶다"는 작가는 내년 단편 위주로 활동하고 2,3년 내에 다시 장편을 쓸 계획이라고.

"대전제라고 생각하는 그 주제에 조금씩 더 가까이 갔으면 좋겠어요. 소재나 이야기 면에서는 뭔지 모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첫 번째 장편이 도시 사는 여자를 경쾌하게 그렸다면, 두 번째 장편은 미스터리 기법으로 그린 가족이야기, 세 번 째는 또 다른 방식이겠죠.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