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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 고민했어요"

시인 김민정
'미친 희극미'

누군가 그녀의 시를 이렇게 말했다.(강정, <나쁜취향>, 랜덤하우스코리아) 기실 그녀의 시는 노래보다는 읊조림이란 말이 더 적확할 듯하다. 그 시에서, 헤어진 애인은 옷장에 불을 지르며(<그녀의 동물은 질겨>), 오빠는 뼈가 상한다는 구실로 나를 정액으로 소독한다(오빠라는 이름의 오바>). 모호하고 격렬한 이미지들이 기괴한 긴장 상태를 만든다. 이 읊조림은 시인의 말처럼 "많이 약해져서" 이런 모양새다. 이전에 그녀의 목소리는 더 '셌다'.

일상을 부유하는 그녀의 입술

그러니까 그녀는 우리가 차마 못 한 말을 한다. 그것도 시라는 고상한 장르에서.

이 일그러진 읊조림이 왜 시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극단에 선 자의 몸부림은 아름다울 수 없으니까.'

비어와 속어, 육두문자가 난무한 그녀의 시는 상처를 집요하게 반추해내는 일상의 재현이다. 때문에 그녀의 중얼거림은 서정적이지 않지만, 분명 시적이다.

시인 김민정. 1999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으니 올해로 11년 차. 2005년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지난 해 12월 두 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냈다. 솔직한 언어와 역동적인 감각으로 주목받았다. 문어와 구어의 경계에선 말들은 솔직하고, '시적인 것'에 대한 자유로움은 역동적인 감각을 만들어 낸다.

냉혹하고 가혹한 세계를 거칠 것 없이 그려가는 그녀는 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한국 여성시의 어떤 계보를 잇는', '힘이 센 변종'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윤리적 자기 검열이나 시적인 것에 대한 강박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공포와 혐오로 일그러진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은 오히려 장난스럽고 희극적이다.

'포물선을 타 넘어가는 장외 홈런볼에 올라타나 내가 엿같이 찰싹하고 내 실루엣 위에 달라붙는 순간, 탕! 소리와 함께 아빠의 눈알이 10점 만점의 놀라운 사격 솜씨를 자랑하며 과녁 정 중앙을 홉뜨고 돌아온다.'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중에서)

두 번째 시짐 '그녀가 처음…' 일상의 모습 담으며 타자와 접점찾아

때문에 그의 첫 시집 앞에 붙은 수식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미친 희극미'. 흔히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되는 이미지 과잉의 이 읊조림은 그녀가 2000년대 주목받는 젊은 시인이 되는 기제가 됐다. "첫 시집이 날아다녔다면, 이번에는 땅에 붙어다녔다"는 시인의 말처럼, 두 번째 시집<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에서 시인은 타자와의 접점을 찾아간다.

'천안역이었다/연착된 막차를 홀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순간 다급하게 펜을 찾는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게서 따뜻한 캔이 만져졌다/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그 시였던가/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던 밤이었다.'(<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중에서)

시인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바로 시가 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특별히 시적인 것을 찾는 사람도 믿지 않는다. (시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그녀의 시집이 새로워진 것은 이렇듯 일상이 시집에 들어왔다는 점. 그러나 시집에 실린 노래는 여전히 선과 악, 진리와 허위의 구분을 초월해 조각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이 이미지들은 비루하지만 유쾌한 이 시대의 풍경을 포착해낸다. 섬뜩한 이미지는 음울하지 않다. 지난 10년간 그녀의 시는 자기 응시에서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시처럼, 시인은 일그러진 모습일까? 시집에 붙인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인환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을 시인의 인격으로 해석할 수 없다. 시의 화자는 어떤 가면도 쓸 수 있으며 어떤 존재 방식도 취할 수 있다.'

이제 시적 화자가 아닌 시인 김민정을 만나는 시간.

- 첫 시집과 비교해 두 번째 시집은 많이 약해졌다. 사회화의 영향인가?

"첫 시집과 차별화를 두려고 1년 묵혔다. 첫 시집은 '시는 나 혼자 갖고 놀면서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쓴 시들이다. 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 혼자 온갖 언어 실험을 다 했다. (타인과) 대화하려는 어떤 의지도 없었다. 이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 시집을 4부로 나눠서 편성했는데. 잘 짜인 구성이라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나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일상의 이야기들이 1부 '작은 사건들'에 묶였다면, 2부 '우물우물'에는 사랑이야기가 많고, 3부 '신은 각주에'는 첫 시집에서 털지 못한 죽음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4부 '뛰는 여자 위에 나는 詩'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대놓고 하는 공간이다."

- 예전 인터뷰에서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라고 한 적 있다.

"개인적으로 최승자 시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시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분은 말과 글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오 개새끼/못잊어'(최승자, 시 )는 우리 정서와 현대적으로 내뱉는 말의 중심을 다 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소설을 쓰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갔는데 그 시집을 읽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 시를 읽을 때 시적 화자와 시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특히 이 시집은 시인 주변의 이야기로 시를 만든다는 점에서 일면 자서전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 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 미당처럼 한 순간의 영감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첫 시집은 완벽하게 경계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자유로웠다. 이번 시집에 실린 많은 시는 일상에서 얻은 사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게 처음이기 때문에 그들이 던지는 조그만 메시지가 나한테는 크게 다가왔다. 정형화된 틀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경계를 내가 어떻게 허물면서 갈 것인가 고민했다."

- 시집에 시적 화자가 다양하다. 시인, 여자, 소년 등등.

"일상의 경험을 시로 쓰면서 허구적인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시를 쓰는 바탕에 그런 장치가 많다. 고백하자면 시를 쓸 때 캐릭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의 소설을 쓰는 것처럼 '얘(시적화자)는 이래서 착해 보이고, 얘(또 다른 시의 시적화자)는 이래서 강해 보이고' 나름의 아바타처럼 키웠던 것 같다."

- 2번째 시집은 시인으로 고비다.

"프로야구 선수로 치면 2년 차 징크스가 있지 않나. 2000년대 중반 3년 동안 49권의 시집을 만들면서 두 번째 시집을 내는 시인들의 고민이 뭔지 옆에서 지켜봤다. 첫 시집에서 두 번째 시집으로 몇 년 만에 시 세계가 옮겨갈 때 칭찬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특히 세계관보다 기교가 먼저 승했던 시인들에 대해 우려를 했던 부분이 있었다.

두 번째 시집이 좋은 반응을 얻은 시인들은 조용히 자기 세계를 열어가는 시인들이었다. 시에 대해 겸손한데, 시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잡아 먹히는 듯하다. 놀라운 건 시인이나 시를 보는 사람이나 이런 변화를 귀신같이 안다는 거다. 좋은 시집은 잘 벤 모과차처럼 작품 하나하나가 씹을수록 향이 난다. 이 시집을 1년 묵혔는데, 올해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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